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지난 4월 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지난 4월 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태현(24)이 1일 열린 첫 공판에서 '우발적 살인'을 주장했다.

이날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오권철)는 살인, 절도, 특수주거침입, 정보통신망침해, 경범죄처벌법위반죄로 기소된 김씨의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김씨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만난 피해자 A씨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토킹하다, 지난 3월 23일 A씨의 집에서 여동생과 어머니, A씨를 차례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의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첫번째, 두번째 피해자를 살해할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며 "(김씨가) 도주하지 않고 자살을 시도한 점을 참작해 달라"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A씨와 온라인 게임을 매개로 친분을 갖게 됐다. 지난해 11월부터 SNS를 통해 A씨와 연락하며 온·오프라인 상에서 함께 게임을 즐겼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A씨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됐다.

김씨는 지난 1월 A씨를 비롯해 온라인상에서 게임을 하면서 알고 지낸 사람들과 만나 식사하던 중 A씨의 거절에도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고집해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날 이후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메신저 상에서 김씨를 차단했다.

그러자 김씨는 A씨를 집요하게 스토킹했다. 이전에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A씨의 집주소가 나온 부분을 확인한 뒤 집으로 수차례 찾아갔다. 피해자가 불쾌감을 표시하며 거부하자, 다른 휴대폰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욕설을 포함한 위협적 메시지를 전송하기도 했다.

이에 앙심을 품고 살인을 계획한 김씨는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평소 쓰지 않는 닉네임으로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 A씨의 근무 일정을 확인했다. 23일 범행하기로 결심한 김씨는 사흘 전 서울 강남구의 한 생활용품점에서 청테이프, 코팅장갑, 물티슈 등을 훔쳤다. 범행 당일에는 노원구 마트에서 과도 한자루를 몰래 가지고 나왔다.

범행 당일 김씨는 퀵서비스 기사로 가장해 A씨의 동생이 있는 집 안으로 침입했다. 동생을 살해한 뒤 집에 차례로 귀가한 어머니와 A씨를 연이어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김씨에게 흉기를 내려놓으라며 설득하고, 몸싸움을 벌이는 등 강하게 저항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유족 측은 재판에서 검사가 이같은 공소사실을 발언하자 흐느꼈다. 재판부가 김씨가 그동안 반성문을 4차례 제출했다는 점을 언급하자 "진실을 얘기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유족 측은 이날 재판에서 "사람을 세 명을 죽여놓고 자기는 살고 싶어서 반성문을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어이없다"며 "인간도 아니고 인간쓰레기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재판부에서 저런 인간은 앞으로도 이 사회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꼭 증명해주길 바란다"며 울먹였다.

A씨의 고모인 김모씨는 "살인자에게 기회를 준다면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며 "사형 제도가 다시 부활될 수 있게끔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씨는 재판 동안 눈의 초첨을 흐린채 정면을 바라봤다. 유족 측이 앉은 방청석 쪽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김씨를 구속기소했다. 김씨는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냈다. 다음 재판은 이달 29일에 열린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