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는 해외에서도 여럿 발생했다. 가상화폐와 암호화된 인터넷망 ‘다크웹’을 활용해 마약을 거래하거나 테러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식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자금세탁규정 등 관련 제도를 마련해 범죄에 대처하고 있다.

미국의 ‘실크로드 사건’은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실크로드는 마약 등 불법 물품을 거래하는 암시장 웹사이트였다. 운영자인 로스 울브리히트는 2011년 1월부터 비트코인으로 마약과 총기, 불법 콘텐츠, 해킹 기술, 신용카드 정보 등을 판매했다. 익명성을 가진 가상화폐 덕분에 법망의 추적을 피했다. 여기에 다크웹까지 활용해 더욱 은밀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3년 10월에야 울브리히트를 체포하고 실크로드를 폐쇄했다. 당시 수사국은 실크로드에서 마약업자 수천 명이 마약 수백㎏을 유통하고 10만여 명이 불법 거래를 했다고 밝혔다. 2015년 미국 뉴욕시 남부지방법원은 마약 판매와 돈세탁 등 혐의로 울브리히트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가상화폐가 테러자금 모금 수단으로 쓰인 사례도 있다. 2015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비트코인 등을 활용해 학교와 병원을 설립했다. 당시 유럽연합안보연구소(EUISS)는 “IS가 적발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자금을 운용하기 위해 가상화폐를 사용한다”고 했다.

각국은 범죄를 막기 위해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관리 감독을 강화했다. 미국은 2017년 ‘통일가상통화업 규제법’을 제정해 사이버보안, 자금세탁 등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 가상화폐 관리자가 이체 업무를 하려면 연방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돈세탁 범죄가 발생하면 가상화폐거래소에 책임을 추궁할 정도로 규제가 잘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비트코인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면 독일 연방은행법에 따라 금융당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지 않고 사용하면 형사 처벌된다. 사업자는 사업 계획, 평가 자료 등을 독일연방금융 감독기구에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영국도 가상화폐 사업자는 금융당국 허가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자금세탁규정도 준수해야 한다.

한국은 내년 3월에야 가상화폐가 법적 제도권에 들어온다. 지난달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은 법령 대신 행정규제로 가상화폐를 관리했다. 정부는 2018년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금융회사가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를 관리하도록 했다. 사실상 은행을 통한 간접 규제여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일본은 가상화폐 업체도 매년 감사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정부 기관이 수시로 감독하고 있다”며 “한국은 가상화폐 자체가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해 거래소 내 관리 감독도 무방비 상태”라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