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영상물을 국내에서 방영하는 대가로 지급한 권리 사용료(라이선스료)가 과세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특별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해외 애니메이션 등을 수입하는 TV채널 사업자 A사가 서울세관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A사는 2010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해외 제작사들로부터 애니메이션 등이 담겨 있는 ‘마스터 테이프’를 수입했다. A사는 해당 영상물을 1년 이상 국내에서 방영하는 대가로 권리 사용료를 지급했다. 관세당국은 A사가 낸 권리 사용료를 과세가격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단, A사에 관세 등 총 5억3100여만원을 부과했다. A사는 영상물을 방영하는 행위에 ‘재현권’(관세법상 과세대상에서 제외)이 인정돼 과세가격이 줄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관세법 제30조에 따르면 과세가격은 구매자가 해외 판매자에게 실제 지급했거나 지급해야 할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이때 관세법 시행령 제19조에 따라 특허권·실용신안권·디자인권·상표권 등의 권리 사용료는 과세가격에 포함된다. 단 수입물품을 국내에서 복제·재가공해 재현할 권리인 ‘재현권’은 가산대상에서 제외된다. 관세는 수입신고할 당시에 부과하는 것이고, 재현권은 수입신고 이후 문제로 재현권에 대한 사용대가는 수입물품의 가치와는 별도로 취급해 과세가격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1·2심 재판부는 수입한 마스터 테이프를 복제, 재가공해 다른 테이프로 재생산한 것이 아니라 해당 마스터 테이프를 그대로 틀어 방영하는 것이므로 재현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영상물을 가공하지 않고 단순히 방영하는 방법으로도 재현권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 라이선스료는 수입신고 이후 애니메이션 등 영상물을 국내에서 방영하는 권리의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며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에 포함될 수 없는 재현권의 사용대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원고를 대리한 조성권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새로운 유체물을 생산할 때뿐만 아니라 영상물을 틀 때도 재현권이 인정된다고 최초로 판단한 것”이라며 “재현권을 융통성 있게 해석하는 국제적 추세에 부합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