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D로 부엌가구 첫 설계…자동차 일괄생산시스템 주택 리모델링에 적용

한샘 회장직에서 31일 물러난 최양하 회장은 한국 가구업계의 역사를 새로 쓴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그는 작은 부엌가구 회사였던 한샘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CEO)까지 올랐고, 25년간 CEO로 회사를 종합 인테리어 1위 기업으로 키웠다.

그에겐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지휘봉 내려놓은 최양하 한샘 회장…위기마다 새 사업으로 돌파
서울 출신인 최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을 거쳐 1979년 한샘에 입사했다.

그는 1994년 CEO가 된 후 회사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가구, 종합 인테리어 등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이러한 도전이 성공하면서 한샘은 매출과 시가총액이 각각 15배, 50배 증가하며 매출 2조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인테리어 하면 한샘을 떠올릴 정도다.

특히 1997년 IMF 사태로 가구업체가 줄도산하는 상황에서 역으로 가구사업을 확장해 한샘을 3년 만에 1위 자리에 올려놓기도 했다.

2013년엔 가구 업체로는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공간에 기반한 리모델링을 처음 제안해 한국 주거문화에 신개념을 도입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집 전체를 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한샘은 자동차 공정의 일괄 생산 시스템을 주택 리모델링에 적용해 상담에서 설계, 시공, 애프터서비스(AS)까지 전 과정을 일원화했다.

또 부엌과 욕실, 창호, 마루, 도어 등을 하나로 묶은 패키지 상품도 출시했다.

최 회장은 신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PC 개념조차 생소했던 1989년 건축과 중장비 설계에 사용되던 캐드(CAD) 프로그램을 부엌 가구 설계에 적용했다.

1999년에는 본사와 공장, 유통 채널, 시공 요원을 전산으로 통합 관리하는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3일 납기, 1일 시공'을 현실화했다.

한샘 매장을 방문하면 홈플래너가 3D 설계도를 시현하며 상담을 해주는 방식도 최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그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휘봉 내려놓은 최양하 한샘 회장…위기마다 새 사업으로 돌파
2014년 스웨덴의 '가구 공룡'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한국 가구업계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 회장은 정공법을 택했다.

고객이 직접 시공하는 이케아의 DIY 모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제품 품질을 높이고 고객에 대한 직원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밖에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한샘은 영업과 시공 사원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이전보다 2배 많은 매출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최 회장의 이번 퇴진이 한샘의 3분기 실적 악화와 맞물리면서 그가 물러난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한샘 관계자들은 후진에게 회사를 맡겨야 한다는 의지에 따른 것으로, 회사의 매출 감소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주변에 "퇴임 후에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고 싶다.

그것이 내 마지막 역할"이라고 말해온 최 회장은 앞으로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샘 관계자는 "최 회장은 IMF, 이케아 진출 등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성장동력을 끊임없이 창출한 타고난 경영인"이라며 "미래 예측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CEO 덕에 한샘은 부엌, 가구, 종합인테리어에서 1위 기업이 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