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도 없고, 변호인 신청도 무시… '얼렁뚱땅 재판'
절차 미비를 이유로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는 재판이 속출하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은 ‘졸속 재판’들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에 추징금 1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의정부지법 2심 재판부가 항소이유서를 제출받고도 공판기일을 열어 피고인에게 변론할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변론을 한 후 심판받을 수 있는 피고인의 기회가 박탈됐다”고 지적했다.

조재연 대법관이 주심으로 나선 또 다른 대법원 2부 선고에서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 사건이 파기환송됐다. 국선 변호인을 선정해 변호인이 공판 심리에 참석하도록 해야 하는데도 변호인 없이 일방적으로 선고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건은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부가 맡았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가 진행한 조모씨에 대한 사기죄 항소심도 절차 문제로 고법으로 되돌아갔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남편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피고인의 주거나 사무소 등을 알 수 없다며 피고인 없이 판결했다. 이는 위법”이라며 징역 8월을 선고한 2심을 파기했다.

지난해 6월에는 판사 세 명인 ‘합의부’에서 재판했어야 할 사건을 판사 한 명이 판결하는 ‘단독’에서 재판해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이런 절차상 문제를 일으키면 피고인은 시간 낭비는 물론이고 변호사비 등 각종 비용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세 번에 끝날 재판이 파기환송심을 거쳐 다섯 번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처럼 대법원까지 와서 파기환송되는 사례는 그나마 다행이다. 1·2심에서 끝나버리는 ‘얼렁뚱땅’ 재판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것이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실수든 고의든 절차조차 지켜지지 않은 재판은 엄격히 문제 삼아야 하는데 법원 분위기가 그렇지 못하다”며 “법관 평가에 이런 부분을 적극 반영해야 ‘재판받을 권리’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