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하루새 400만원 벌었다는데"… 비트코인 블루 앓는 젊은이들
“회사 선배가 단 하루 만에 가상화폐 투자로 400만원을 벌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제 한 달치 노동과 클릭 몇 번의 가치가 같다고 생각하니 허무하네요.”(직장인 강모씨)

가상화폐 열풍은 ‘비트코인 블루’(비트코인 우울증)라는 신풍속도를 낳았다. 주변에서 가상화폐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면서 여기서 소외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는 것. 비트코인 블루의 대표 증상은 근로의욕 저하다. 강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일하는 동안에도 적금을 깨서라도 비트코인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불만이 너무 커져 분노를 삭이는 청춘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취업한 신입사원 노모씨(27)는 비트코인을 떠올릴 때마다 화가 나서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당시 갖고 있던 비트코인을) 팔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하루하루 회사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친구나 연인 관계를 위협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대학 졸업반 김모씨(23·여)는 “남자친구와 모처럼 만나 데이트하는 날에도 줄곧 비트코인 시세창만 바라보고 있어서 한바탕 싸우기도 했다”며 “심지어 취업 준비를 그만두고 전문 투자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는데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는 젊은이들도 등장하고 있다. 대학생 이모씨(22)는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가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번 뒤 ‘금전만능주의자’가 됐다”며 “돈에 정신이 지배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2년째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이모씨(25) 역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만약 비트코인을 해서 돈을 좀 벌었더라면 ‘둠강’(불법으로 인터넷 강의를 싸게 듣는 것)을 듣거나 하루 1000원짜리 학식(학생식당 밥)을 먹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고시에 붙는다고 해도 남들이 휴대폰으로 번 돈만큼 벌 수 없다는 생각만 하면 허무하다. 점점 불행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2030세대가 상류층으로 가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는 박탈감에 빠져 있다고 분석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해외나 국내의 유명인이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식에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또래가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허탈감이 더 크다”며 “특히 가상화폐 투자를 위한 노력이나 비용이 취업 준비나 고시 공부 등에 비해 훨씬 작은데도 성과가 더 크기 때문에 이 같은 박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남정민/이건희 인턴기자 jungmin28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