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서 장례미사…물대포 맞고 쓰러진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노제
광화문 광장서 대규모 영결식…야권 정치인 등 2만여명 참석


작년 11월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은 뒤숨진 고(故) 백남기(69) 농민 장례가 5일 민주사회장(葬)으로 거행됐다.

9월25일 고인이 사망한 지 41일 만이다.

오전 8시 백씨가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천주교 수도자들과 유족 등 일부만 참석한 발인식으로 장례가 시작됐다.

이어 백씨의 시신은 운구차로 옮겨져 장례미사가 열리는 명동성당으로 출발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한 미사에는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 정치권 인사 등 8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강론에서 "정직하게 땀 흘려 기른 우리 먹거리의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외침이 살수 대포에 참혹하게 죽어야 할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나"라며 "책임있는 분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말했다.

미사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은 당 이종걸·표창원 의원, 심상정 정의당 대표, 농민 출신인 강기갑 전 의원 등 야권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문 전 대표는 "백남기 농민이나 유족에게 죄송스러운 심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백씨 시신은 고인이 쓰러진 장소인 종로구청 사거리로 향했다.

'살인정권 물러나라' 등 문구가 적힌 만장 80여개와 추모객들이 뒤따랐다.

경찰은 진행방향 구간을 일부 통제해 운구행렬을 도왔다.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치러진 노제는 상임장례위원장인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와 세월호 참사 유족인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의 발언, 소리꾼 정유숙씨와 춤꾼 이삼헌씨의 추모공연으로 진행됐다.

이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유족과 시민들을 비롯해 문재인 전 대표,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야권 대선 주자와 야 3당 대표 등 2만여명(경찰 추산 1만 1천여명)이 참석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추도사에서 "헌정질서를 마비시키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무도한 집권세력은 오히려 국가폭력을 비호하며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능욕했다"며 "엄중하고 비상한 시국"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다행히 온 국민의 노력으로 부검영장 집행을 막아내고 이제 고인을 영면의 길로 떠나보내게 됐다"며 "특검으로 백남기 선생의 사인을 밝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박원순 시장은 경찰이 백씨에게 쏜 물대포를 가리켜 '살인적 물줄기'라면서 "이것은 명백한 국가적 폭력이다.

이것은 국가의 이름으로,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고인의 딸 백도라지씨는 "우리 가족과 투쟁본부는 책임자들이 처벌받고, 재발방지책이 포함된 적절한 사과를 받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면서 "내년 기일에는 승리 소식을 들려드리고 싶다.

아빠 사랑해요"라며 울먹였다.

이후 백씨 시신은 고향 전남 보성으로 옮겨지고, 6일 보성과 광주에서 노제를 거쳐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1947년 보성에서 태어난 백씨는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1980년 체포됐다가 이듬해 3·1절 특별사면되고서 보성으로 내려가 농업에 종사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가톨릭농민회에서도 활동했다.

작년 11월14일 서울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고인은 경찰 차벽 앞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그는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올해 9월25일 숨을 거뒀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고인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에 이른 것이 명백하다며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했다.

검찰과 경찰은 명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시신 부검이 필요하다며 영장을 청구해 논란이 벌어졌다.

유족과 협의 등 조건부로 발부된 부검영장은 유족 측의 완강한 거부로 집행 시한인 이달 25일까지 집행되지 못했다.

검경이 결국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기로 해 비로소 장례 절차가 시작됐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이대희 기자 pul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