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분식회계 묵인' 前딜로이트안진 이사 구속영장 청구

전 경영진이 5조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는 대우조선해양이 실제 경영 현황을 반영한 내부 회계 자료와 외부용 회계 자료를 각각 별도로 관리해온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재무제표의 적정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공인회계사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눈을 감은 것으로검찰은 파악했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28일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정황을 발견하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적정' 외부감사 의견을 내준 혐의(공인회계사법 위반 등)로 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배모 전 이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배씨는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한 안진의 외부감사 업무에서 법적·실무적으로 책임을 지는 이사를 지냈다.

검찰은 배 전 이사 등 안진 소속 공인회계사들이 고재호 전 사장 등 전 대우조선 경영진이 5조원대 회계사기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분식 정황이 노출됐음에도 이 문제점을 밝혀내지 않고 묵인한 것으로 보고 법률상 책임자인 배씨에게 법적 책임을 우선 묻기로 했다.

회계업계 등에 따르면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수사 과정에서 '이중 장부'를 관리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은 공사 진행률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업에서 해양 시추선이나 유조선 같은 초대형 구조물은 실제로 공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현장에서 따져 회계 장부에 반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탓에 실제 발생 원가(들어간 돈)와 총 예정 원가(들어갈 돈)의 비율로 공사 진행률을 따지는 '투입법'이라는 계산 방식을 쓴다.

회계 기준상 공사 진행률은 실제 발생 원가를 총 예정 원가로 나누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조선업 등 수주 산업은 실제 발주처에서 대금이 들어오지 않아도 수주액에 공사 진행률을 반영해 장부상 이익이 들어온 것으로 처리한다.

실적이 나쁜 기업은 분모를 줄여 진행률을 조작의 유혹을 느끼기 쉽다.

공사 진행률을 조작해 매출이나 이익을 부풀리는 것은 결국 장래에 차차 들어올 돈을 회계 장부에 미리 반영해 버림으로써 다음 경영진에게 '부실 폭탄'을 떠넘기는 행위나 다름없다.

대형 수주가 이어지는 호황기에는 이런 폭탄 돌리기가 들키지 않고 오래갈 수 있지만 '수주 절벽'이 생기면 결국 한꺼번에 대형 부실을 장부에 실제대로 반영하는 '빅 배스'(Big Bath) 단행이 불가피해진다.

대우조선은 회사 내부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에는 실제 경영 판단을 담은 총 예정 원가 데이터를 관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주주와 투자자 등에게 공시되는 재무제표를 검증하는 회계법인에는 별도로 관리되는 다른 수치가 담긴 총 예정 원가 내역이 담긴 엑셀 파일을 제공했다.

검찰은 배씨 등 대우조선 담당 안진 공인회계사들이 적어도 2014년부터 대우조선이 공사 진행률 현황 자료를 이중으로 관리하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경위 해명을 요구하거나 '의견 거절', '한정 의견'을 내지 않고 2015회계연도까지 외부감사 업무를 진행한 것으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부터 대우조선의 회계 적정성을 감독하는 외부감사 업무를 맡은 안진은 매년 '적정' 감사 의견을 내놓다가 분식회계 의혹이 터지자 뒤늦게 재무제표 수정을 요구했다.

안진은 '작년 추정 영업손실 5조5천억원 가운데 약 2조원을 2013년, 2014년 재무제표에 나눠 반영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회사 측에 정정을 요구해 '뒷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대우조선은 이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2013∼2015년 각각 7천700억원, 7천400억원, 2조9천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고 재무제표를 수정 공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인회계사들이 한 번만 제대로 행동을 했어도 대우조선해양 사태에 따른 피해가 크게 줄었을 수 있던 것으로 판단한다"며 "검찰이 모든 회계 부정 사건을 잡아낼 수 없고 결국 외부감사 제도의 개선을 통해 우리 경제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