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대규모 급식감사…육류 대신 빵 추가하고 급식일지 허위 작성
횡령 등 181건 적발해 경찰 수사 의뢰

계약된 단가의 식재료보다 낮은 가격의 제품을 몰래 들여오거나 납품업체와 유착해 식재료를 외부로 빼돌린 학교들이 다수 적발됐다.

서울의 한 사립 고교는 학교법인 이사의 아들 내외가 운영하는 업체에 계약을 몰아준 뒤 이들이 허위로 청구한 비용 수천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사립고에서는 식단에서 축산물과 수산물을 제외한 채 빵과 케이크 등 단당류 위주의 식단을 짜는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과도한 당분 섭취를 조장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5일 초·중·고교 51개교에 대한 급식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학교 4곳과 12개 급식·납품업체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사립고 급식운영에 재단 이사 아들·며느리·손자까지 '부당 내부거래'
교육청은 작년 10월 충암고 급식비리 적발 이후 서울 시내 전체 초중고교들의 급식관련 회계서류를 전수조사한 뒤 부정이 의심되는 학교 51개교를 추려 최근까지 현장 감사를 진행해왔다.

이번 감사에서 부당 수의계약 등 계약법 위반과 위생·안전점검 및 영양관리 부적정 등이 적발된 건수는 181건에 이른다.

감사결과 한 사립고교에서는 급식운영과 식재료 납품을 둘러싸고 법인 이사의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얽히는 공고한 '내부자 거래'의 카르텔을 형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교는 급식 위탁운영 업체 선정 시 학교법인 이사의 아들이 운영하는 곳에 근거없이 높은 점수를 줘서 맡기고, 식재료 납품은 법인 이사의 며느리와 손자가 운영하는 업체와 불법 수의계약을 맺었다.

이들 업체는 식단과 납품목록에 없는 품목을 허위로 청구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챙겼다.

이렇게 급식비가 줄줄이 새는 사이에 학생들은 며칠 전 만들어진 음식을 다시 먹어야 했다
배식한 뒤 남은 멸치볶음 등 밑반찬은 규정상 곧바로 폐기해야 했지만, 급식업체는 이런 음식들을 며칠씩 보관했다가 다시 사용했다.

이런 내용이 감사에서 적발되자 업체들은 곧바로 폐업 신고를 한 뒤 관련 서류 등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다른 사립고교는 특정 업체들에 계약을 몰아주고, 높은 단가의 제품으로 계약을 맺은 뒤 뒤로는 낮은 단가의 제품을 납품받았다가 적발됐다.

이 학교는 육류를 납품받고도 검수 관련 서류를 폐기하거나 축산물 유통관리시스템 입력을 하지 않는 등 횡령이 의심되는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

축산물을 납품받으면서 축산물이력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유령 품목'을 공급받은 것으로 기재한 학교도 적발됐다.

이 학교는 납품업체와 짜고서 축산물 이력번호를 위·변조하는 수법으로 식재료를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다.

◇종교적 이유로 육류 제한…학생들, 단백질 대신 단당류 과다섭취
또 다른 사립 고교는 학교법인을 운영하는 재단이 육류나 생선류 등 단백질 식단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 학교는 육류를 제한하는 특정 종교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빵과 케이크 등 단순 당류 위주의 식단을 구성해 학생들의 당분 과다섭취를 조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육류 대신 빵과 케이크류 등을 식단에 추가로 넣은 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상 급식관리 부문의 영양관리 기준을 맞추기 위해 급식일지의 식재료 사용량을 허위로 작성하기까지 했다.

영양사 한 명이 급식운영과 식재료 구매와 관련해 '전횡'을 일삼은 곳도 있었다.

한 공립고교의 영양사는 정해진 식단을 마음대로 수시로 바꾸고, 식재료를 독자적으로 발주해 사들인 뒤 월말에 학교에 사후품의를 올려 계약을 요청하는 등 관련 절차를 무시한 채 급식에 전권을 휘둘렀다.

이 영양사는 납품업체가 실제로 식재료를 공급했는지, 식재료가 급식에 실제 사용됐는지를 확인할 수 없게끔 급식관련 서류를 보관하지 않거나 허위로 작성하는 등 회계업무도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청은 영양사가 일부 식재료를 외부로 반출해 횡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학교가 급식 위탁운영업체를 선정하면서 추정금액이 5천만원 이상이면 공개입찰을 해야 하지만, 수의계약을 맺거나 협상 절차를 불투명하게 진행해 특정업체에 계약을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은 감사결과 관련 법규와 절차를 위반한 정도가 위중한 학교 관계자 11명에 대해서는 중징계를 요구하고, 245명에 대해서는 경고·주의 조치했다.

횡령이 의심되는 4개 학교와 12개 업체에 대해서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급식비리 재발 방지대책 마련 작업에도 나섰다.

중식을 제외한 조·석식이 급식업체에 모두 위탁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학교급식을 가능한 한 학교직영 체제로 운영하도록 관련 지침 개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급식회계 관련 연중 사이버 감사를 실시해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즉각 현장감사하는 등 감시 체제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