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규제 폐지로 단지 설계가 차별화됐던 2000년, 한 건축사가 자신이 설계한 아파트 단지를 들뜬 마음으로 자랑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 단지는 서울 동부이촌동에 있는 A아파트. 자랑의 요지는 단지 내 모든 가구에서 한강이 보이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단지 모습은 각 동을 한강변에 사선 방향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한강대교를 건너면서 그 아파트가 있는 동부이촌동을 바라보면 무척 흥미롭다. 단지 서쪽에는 한강변에 접한 동의 중앙을 뚫어 단지 안쪽 동에서도 한강 조망이 가능하게 설계한 B아파트, 동쪽에는 콘크리트 더미가 아닌 부드러운 외관의 C아파트 등이 들어섰다. 모두 2000년 전후 설계된 아파트다.

당시 단조로운 성냥갑(판상형) 콘크리트 더미 연속이었던 한강변 경관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가 서울시의 고민거리였다. 그러나 민간 건설사가 정해진 분양가, 주어진 용적률, 동간 거리간격 등 건축 기준에 맞춰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안은 판상형 아파트를 격자형으로 배치하는 것뿐이었다. 건축비를 최소화하고 가구 수를 최대로 늘릴 수 있어서다.

단지 설계 차별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시민의 소득 증가로 한강 조망 같은 주거환경의 질적 수준에 대한 선호가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한강 조망의 시장가치가 주택가격의 1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A아파트는 ‘분양가능 주택’의 수를 줄이는 대신 높은 수준의 주거환경(어메너티)을 제공, 좀 더 높은 가격으로 분양해 사업성을 확보했다. 이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분양가상한제)를 강요했다면 가구 수를 줄이는 단지 설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비자의 선호 변화에 부응하는 다양한 설계와 고품격 주택 공급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2000년대 초 김대중 정부에서 이뤄진 분양가 규제 폐지의 긍정적 효과였다.

분양가 규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고정된 3.3㎡당 분양가를 유지하던 1980년대 말 전세가격과 주택가격 급등은 정권의 위협 요인으로 인식됐다. 노태우 정부는 ‘200만가구 주택건설’이라는 충격요법을 선택하고 민간 건설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완화된 형태의 분양가 규제인 ‘원가연동제’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주택이 계획 물량 이상으로 공급됨에 따라 1990년대 후반까지 주택시장이 안정세를 띠었다. 다만 분양가 규제 영향으로 급격한 소득 증가에 부합하는 품질 좋은 주택 공급은 실현되지 못했다.

어떤 형태든 분양가 규제는 시장가치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가격이 설정되도록 만들었다. 분양가를 적정 비용의 관점에서 결정한다는 얘기다. 시장가치보다 낮은 수준에서 분양가를 규제하면 가격 상승 때 ‘로또’ 당첨 같은 우발이익을 낳는다. 우발이익은 1980~90년대 모델하우스 앞에서 밤샘 줄서기하던 투기적 행태를 조장한다. 더불어 로또를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복잡한 공급 관련 제도, 투기적 행태를 막기 위한 전매금지제도와 같은 추가적 규제 도입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주택 공급 부족에 따른 전세대란이 발생하자 김대중 정부는 분양가 규제 폐지 카드를 꺼냈다.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이 확대되면서 2002년을 기점으로 전세가격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다만 노무현 정부 시기 강력한 규제책들을 도입했음에도 아파트 가격은 지속적 상승세를 이어갔고, 2007년 민간택지까지 적용되는 등 3년간에 걸친 순차적 분양가상한제 도입이 일단락됐다. 민간에서는 2007년 이후 연간 평균 주택 인허가 물량이 이전 37만가구에서 28만가구로 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 이유는 분양가상승이 재고주택의 가격상승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술연구가들은 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입주가 이뤄진 신규 아파트의 가격변동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아 분양가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정부 때 분양가 규제를 폐지하지 않았더라면 2000년대 주택가격이 안정화됐을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오히려 주택공급 부족으로 주택가격 및 전세가격 상승이 장기화됐을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2000년대 분양가 규제 폐지 이후 건설된 아파트들은 이전보다 단지 및 평면 설계의 개선 등 급격한 질적 향상을 이뤘다. 질적 향상은 시장에서 이용가치에 바탕을 둔 시장가격 차이를 발생시킬 것이다. 실제 2000년 3월 동일했던 수도권 입주 5년 이내 단지와 1990년대 입주한 단지의 가격(3.3㎡당)은 최근 1400만원과 1000만원으로 벌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평균 분양가는 기존 아파트가 아니라 신규 아파트 가격 수준을 따르고, 기존 아파트 가격은 분양가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분양가 상한제 폐지의 입법화와 관련, 상한제 폐지로 무슨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회의와 분양가 상승에 따른 기존 아파트 가격 급등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복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침체된 주택시장과 분양가 상한제 폐지 상황을 감안할 때 모든 주택건설사가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는 여력은 없어 보인다. 다만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진 양질의 아파트 단지는 비용이 아닌 적정한 시장가치를 반영한 분양가 선택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들 사업 중 다수는 재건축 및 재개발 단지일 것이고, 이는 재건축 및 재개발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주택시장의 거래 활성화를 촉발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분양가 상한제와 같은 가격규제는 장기적으로 주택의 질적·양적 공급을 축소해 결과적으로는 임대료와 가격 급등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런 문제점을 지닌 규제를 정리해야 한다면 주택시장이 상대적으로 침체된 현재가 적기일 것이다. 또 과거 주택이 모자라던 시기와 달리 인구 및 가구구조 변화 등 다양화되는 주택 수요 변화를 담아내야 하는 때다. 획일적인 주택 공급이 아닌 민간 차원의 혁신적 시도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창무 <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

△ 서울대 도시공학과 졸업 △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도시및지역계획학 박사 △ 한국주택학회 학술위원장 △ 한국부동산분석학회 편집위원장 △ 서울시 주택정책심의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