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배역을 주로 연기해온 한채영(29)이 이번에는 활달하고 유쾌한 인물을 그려냈다. 한 남자(배수빈)를 사랑하는 세 여인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은 새 영화 '걸프렌즈'(감독 강석범 · 17일 개봉)에서 성공한 유부녀 사업가 세진 역을 맡은 것.그는 재벌과 결혼했지만 첫사랑을 잊지 못해 강혜정과 허이재가 분한 두 연적들과 함께 새로운 긴장 관계를 만들어낸다. 1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한채영을 만났다.

"흐트러지고 망가져 때로는 코믹하게 보이는 인물이에요. 그동안 해온 정적인 캐릭터와는 많이 달라요. 모든 것을 가진 듯싶은 여자들이라도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세진도 허한 마음을 채우려는 욕망이 강한 여자예요. "

한채영은 최근 관객몰이에 성공한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대통령 역 장동건의 여자친구 배역을 해냈던 것과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여자친구는 지적이며 차분하지만 세진은 감정의 업다운이 심한 캐릭터.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태도가 특이하다. 첫사랑을 여전히 그리워하면서도 지금의 남편도 사랑한다. 뿐만 아니라 연적들도 좋아하고 아낀다.

"세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은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이에요. 그렇지만 현실에서 일탈을 꿈꾸는 관객에게는 사랑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봐요. 영화가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면 정말 지루할 거예요. 관객들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영화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거든요. "

그러나 진정한 화해에 이르는 길목에서 세 여인은 계급장을 떼고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서로 머리채를 잡아끌면서 감정을 대폭발시킨다.

"싸움신은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여자들이 겪어야 할 통과의례 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 장면을 찍고 난 뒤에야 강혜정씨가 임신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격투신에서 밀고 당기고 집어던지기까지 했는데,미안해지더군요. 강혜정씨는 정말 프로였어요. 저 같으면 미리 얘기하고 '조심해'란 말까지 덧붙였을 듯싶은데ㅎㅎ…."

영화는 연적 간의 치열한 경쟁심도 보여준다. 연적보다 자신이 낫다는 점을 은연 중에 과시하려는 심리다.

"세진은 신마다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달리해요. 자신이 그 현장의 주인공임을 내세우고 싶은 거지요. 세진이 강혜정을 진호의 '섹스파트너'일 뿐이라고 폄하한 이면에는 '쟤는 (나에게) 쨉도 안돼'라는 우월감이 스며 있는 거지요. 여자들의 질투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

이목구비와 몸매가 균형미를 갖춘 서양미인을 닮았다는 점에서 '바비인형'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한채영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CF퀸'으로 더욱 이름 높다. 올 들어서만 한국과 중국에서 화장품 브랜드 등 각각 5편과 3편의 광고에 출연했다. 중국에서는 드라마'쾌걸춘향'과 '불꽃놀이' 등이 히트,'한류배우'로 떴다.

"데뷔 당시 붙은 '바비인형'이란 별명이 지금까지 따라붙는 것은 저로서는 감사하죠.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왜소하고 마른 데 비해 볼륨있는 몸매로 건강하게 비쳐지나 봐요. 여기에 출연작들도 히트하니까 광고 출연 요청이 많아요. "

2년 전 재미동포 사업가 최동준씨와 결혼한 한채영은 "남편이 서포터 역할을 잘해줘 결혼 후 생활이 오히려 안정됐다"면서도 "그러나 둘 다 너무 바빠 지난 두 달 동안 밥을 함께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