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당시 주한대사, 천안문사태시 주중대사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가 12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시블리 미모리얼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81세.
릴리 전 대사는 전립선 암 합병증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한국의 6월항쟁, 중국 톈안먼(天安門)사태 등이 벌어지던 격동의 시기 각각 한국과 중국주재 대사를 역임했고, 앞서 오랜 기간 아시아에서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활동하는 등 미국 동아시아 정책과 외교의 산 증인이다.

석유관련 사업을 하던 부친이 중국에서 머물던 1928년 칭다오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중국통이기도 하다.

미 예일대를 졸업한 뒤 조지워싱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고인은 1951년 CIA에 투신했으며, 1978년까지 27년간 도쿄와 베이징, 대만, 홍콩, 라오스, 캄보디아, 방콕 등지를 무대로 활동했다.

릴리 전 대사는 이후 국무부로 자리를 옮겨 외교관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1984년 당시 대만주재 대사관 격이었던 대만미국연구소 대표를 지내며 미묘했던 양안 관계를 다뤘다.

이어 고인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뒤 1986∼1989년 주한대사, 1989∼1991년 주중대사를 잇따라 역임했다.

고인이 주한대사를 지내던 시절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당시로 한국 내 각계의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던 시기였다.

지난 2004년 발간된 자서전 '차이나 핸즈(China Hands)'에 따르면 고인은 주한대사 시절인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한국의 계엄령을 반대하는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전달해 계엄령 선포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가까스로 막았다고 회고하는 등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또 1989년 천안문사태 때는 중국의 인권탄압을 강하게 비난하며 사태 해결을 위해 물밑 조율작업을 벌였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3일 성명을 내고 "최고 외교관 중 한 명인 릴리 전 대사의 타계 소식에 슬픔을 감출 수 없다"고 애도했다.

클린턴 장관은 "릴리 전 대사는 미국의 동아시아와의 관계 설정에 도움을 줬다"면서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주한대사로서 인권과 민주화를 지지하는 미국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줬고, 극적인 결과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중 간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주중대사를 지내면서 인권을 옹호하고 미국민의 안전을 확보했다"면서 "이번 주 동아시아를 방문하는 가운데 릴리 전 대사가 이룩한 업적을 보고 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이 베이징에서 CIA 요원으로 활동할 당시인 1970년대 초반 중국 주재 CIA지부장을 지낸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별도 성명을 통해 "릴리 전 대사는 탁월함과 큰 영예로 대사직을 수행한 가장 정통하고 유능한 대사였다"고 애도했다.

(워싱턴연합뉴스) 황재훈 특파원 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