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을 비판한 전국 법원의 `릴레이식' 판사회의가 21일 서울고법 배석판사회의로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어 `신영철 사태'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회의는 가장 큰 규모의 고등법원인데다 다른 고법과 비교해 경력이 높은 편인 서울고법의 배석판사가 대부분 모였다는 점만으로도 그간 열렸던 소장판사 회의와는 비중과 의미가 다르다는 게 법원 안팎의 공통 평가다.

이틀간의 소집요구서 회람 때 전체 105명 중 30명만 서명해 간신히 소집 요건을 채우면서 개회 정족수인 과반(53명)에 미달해 개회 자체가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던 게 사실.
그러나 70%가 넘는 75명이 직접 참석하고 불참한 판사 상당수도 위임장을 건네는 등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고 여겨졌던 중견판사들이 단독판사 못지않은 열기를 보여줌으로써 이번 사태를 보는 심각성이 단지 `혈기방장한' 소장에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했다.

특히 6시간 회의 끝에 `신 대법관의 행위는 법관의 재판독립 침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결론을 내놔 신 대법관 행위의 부적절성에는 소장과 중견판사가 공감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외부에 알리지 말자는 다수 의견에 따라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거취 문제도 논의해 절반 가까운 참석자가 신 대법관이 직을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대법원 수뇌부와 신 대법관에게는 상당한 압박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공개된 결론만 놓고 보면 그간 열렸던 판사회의에 비해 다소 비판의 정도가 낮은데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신 대법관의 진퇴에 관한 논의 내용을 내부 전산망에도 올리지 않기로 한 점은 실제 반발 수위 등이 후퇴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 참석자는 "신 대법관이 대법관직을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과 안건 자체로 삼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엇갈려 표결을 했는데 후자 쪽 주장이 근소한 차이로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 전했다.

이번 회의 결과가 향후 사태의 향방을 가름할 중대 분수령으로 평가됐던 터여서 거취와 관련한 논의의 결과를 공표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반발세가 확산하는 확산 동력(動力)이 상당부분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이들이 법관 경력이 10년이 넘는 중견인 만큼 대법관의 진퇴를 직접 거론하는 데 따른 부담이나 부작용을 신중하게 고려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자칫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안과 불신만 부추기고 박시환 대법관의 `5차 사법파동 설화'와 겹쳐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사태의 본질이 정치ㆍ이념 논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신 대법관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서면서 여야 정쟁의 불씨가 당겨진 상황이다.

어쨌거나 표면상 움직임은 일단 소강상태를 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신 대법관에 대한 법원내 비판 여론이 상당하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연판장을 돌리거나 `촛불재판'을 맡았던 단독판사들이 재판개입 사례를 공개하는 등 강도 높은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앞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이세원 기자 sewonlee@yna.co.kr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