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열린 '박연차 게이트' 관련 기자 브리핑.이날 기자들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청탁 로비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연루 의혹에 대해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에게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브리핑 가운데 "박 회장에게서 2억원을 받은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전화로 이 의원에게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검찰이 밝혔기 때문.이는 이 의원이 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어떤 부탁전화도 받은 적이 없다"며 통화 자체를 부인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두 사람의 진술이 왜 엇갈리는지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이 의원을 왜 조사 안 하느냐" "소환 계획은 없느냐" 등 질문을 쏟아냈고 홍 기획관은 "추 전 비서관이 청탁을 거절당했다는데 조사할 이유가 없다" "이 의원과 당시 통화한 사람들이 1200명에 이르는데 이들을 다 조사해야 하느냐"고 받아쳤다. 급기야 한 기자가 "추 전 비서관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냐"고 질문하자 홍 기획관은 짜증섞인 표정으로 언성을 높이며 "진술의 신뢰성은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다"고 날카롭게 맞받아쳤다. 마치 '수사할 생각이 없는데 왜 등을 떠미느냐'는 느낌을 받게 했다.

검찰은 이번 '박연차 게이트'에서 거침없는 수사행보를 보이는 듯하다. 지난해 12월 박 회장을 구속한 후 민주당의 이광재 의원과 서갑원 의원,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을 대거 조사실에 불러 앉힌 데 이어 이제는 노 전 대통령 본인과 가족에게도 칼끝을 겨누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 실세들의 수사에 있어서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추 전 비서관과 박진 한나라당 의원 외에는 칼집에서 칼을 꺼내는 모습조차 보기 힘들다.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은 수사 초기 때부터 '박 회장 구명'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지난 10일에야 출국금지 조치만이 내려졌을 뿐이다. 이 의원은 말할 것도 없다. "청탁을 거절당했다"는 추 전 비서관의 진술에만 의존해 본인을 조사조차 하지 않는 수사 행태에 국민들의 물음표는 늘어나고 있다. '죽은 권력' 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더 날카롭게 칼날을 들이댈 때 검찰은 진정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