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황장엽 노동당국제담당비서가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 수양딸
박모씨(34)에게 보낸 안부편지가 14일 공개됐다.

발신일이 95년3월18일로 된 이 편지는 황비서가 중국 심양을 방문했다가
평양으로 떠나던 자신을 역으로 마중나온 수양딸과 헤어지는 감회를 적고
있다.

A4용지 한장 분량이 채 안되는 이 편지는 "새벽 3시에 역전에 나온 너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다. 그것은 나에게 기쁨과 고무로 된다"고
시작하고 있다.

이어 "사려깊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 법, 빨리 뛰는 자는 자빠지는
법이라는 격언이 있다"며 "성공을 너무 빨리 이룩해 보려고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한거름 한거름(걸음) 전진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고 있다.

또 "무리하지 말라. 몸도 무리하지 말고 사업도 무리하지 말라. 그리고
선배들의 방조(도움)를 많이 받도록 하기 바란다.

풍선생의 방조를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이 편지는 대북무역업무 등으로 박씨와 접촉이 잦은 씨피코국제교역사장
노정호씨가 공개한 것이다.

노씨는 "이 편지는 평양에 도착한 황비서가 중국에 있는 박씨에게 보낸
것"이라면서 "편지 말미에 적힌 풍선생은 요령대학 총장 풍옥충씨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편지를 황비서의 심복인 김덕홍 조선여광무역 사장이 북한과의
무역거래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며 우리 회사에 보낸 보증서와 함께 지난해말
통일원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노씨에 따르면 박씨는 90년대 초부터 북한과의 무역관계로 평양을 자주
드나들며 황비서를 알게돼 부녀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황비서가 지난 92년 박씨를 수양딸로 삼았다"며 "지난 10일 오전
10시쯤 중국 연길에 있던 박씨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 "조금전 비서관인
김덕홍 사장이 빨리 북경으로 피신하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라고 물으며 불안해 했다"고 말해 황비서가
망명요청전 미리 수양딸에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도록 조치했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이어 박씨가 두세차례 한국을 다녀갔으며 당국의 고위인사들을
접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