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쌀과 한컵의 물만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기인.

그러나 네자리수까지 암산하는가 하면 출석부 없이도 출석을 부르는
주산과 암산의 천재.

하지만 가난으로 참외를 먹어보지 못해 "까꾸리 참외"(거꾸로 참외)로
불렸던 선생님.

평양상업학교 졸업생들은 "선생 황장엽"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12일 한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한 북한 주체사상의 완성자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자기 모교이기도 한 평양상업학교에서 46년부터 모스크바로
떠나기전인 48년까지 3년동안 교편을 잡아 처음에는 주산과 암산을 강의하다
나중에는 경제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황장엽이 학생들에게 "까꾸리 참외"로 불렸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가난한 시절을 보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참외 먹는 방법을 몰라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쓴 밑부분부터 껍질을 까서
먹었기 때문에 이같은 별명을 얻었다는 것.

이 학교 7회 졸업생인 황장엽 밑에서 배운 제자들은 주로 14~15회
졸업생들.

15회 졸업생 오정주씨(66.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는 13일 "점심시간이면
한움큼의 생쌀을 씹은 뒤 한 "꼬푸"(컵)의 물과 함께 후루룩 마시곤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행과 함께 "선생 황장엽"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암산 실력과
과묵함 때문에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15회 졸업생으로 평양상업학교 동창회 부회장인 서울 종로구 종로5가
최재경 치과원장(67)은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이라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인기있는 선생님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최원장은 또 "선생님은 평소 수업시간이면 학생들에게 "공자.맹자는
인간의 삶을 가르쳐준다.

영어나 수학 잘한다고 까불지마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 김준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