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고물을 팔아 장애아들을 돌보고 있는 김정용씨(33).

김씨는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사랑의 집"을 마련, 결혼도 하지 않은채
17명의 장애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곳에는 시한부 생명을 이어가는 5살짜리 아이 2명, 뇌성마비.
소아마비 등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 5명, 골다공증으로 꼼짝을
못하는 아이, 부모에게 버려진 정신 장애아등 한시도 눈길을 뗄 수 없는
중증의 장애아들이 모여 있다.

김씨는 중3시절 장애인교회에 나가게 된게 인연이 돼 그후부터 교회,
장애인 복지시설등에서 무보수로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에 나서게 됐다.

"특별한 계기라곤 없었어요.

그냥 도와주는 일이 재미있고 마음이 편해 몰두하게 됐어요"

10여년을 넘게 장애인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해온 그는 지난 91년
장애아동들을 모아 현재의 "사랑의 집"을 시작했다.

"복지시설에 있을때 성인이 된 장애인들의 대소변을 가려주면서
깨달은게 있었어요.

장애인들에게 어렸을때부터 생활교육을 시켜 대소변이라도 가릴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어른이 돼서도 대소변을 못가리면 가는 곳마다 구박을 받거든요"

처음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특수교사 5명을 두고 장애인들을
지도하는 조기 교육실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맨 손으로 시작하다보니 특수교사들에게 월급을 제때 줄 수
없었다.

특수교사들은 떠나버리고 "사랑의 집"은 밀린 집세를 충당하지 못해
구의동, 충주 등을 전전해야만 했다.

친척들의 돈을 겨우겨우 끌어모아 지금의 청주에 자리잡은 것은 지난해
7월.

김씨는 웬만하면 후원금에 의지하지 않고 자력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물상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장 힘든 점은 부족한 일손.아파트 등지에서 고물을
가져가라고 연락이 오지만 쓰레기와 함께 버리는게 다반사여서 분리작업을
하다보면 장애아들을 돌볼 틈이 없다.

7~8명의 애들은 직접 밥을 떠먹여야 하고 대소변을 받아줘야 하는데
일손이 없다보니 장애아중에 좀 나은 애가 일을 거들고 있는 형편이다.

간간이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지만 벅찬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기 일쑤다.

그는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에 오해를
받는 현실이 너무 힘들고 외롭다"고 말했다.

< 청주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