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이 8일째로 접어들면서 일부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총파업에 동참하던 비노조원 중 일부가 현장에 복귀하면서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총파업 이전 대비 60%대 중반까지 회복되고 시멘트 출하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안전운임제 연장안 폐지 등의 강공 카드가 화물연대 파업에 균열을 낳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멘트 출하·컨테이너 반출입 회복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일 전국 12개 항만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2만3733TEU로 총파업 이전 평시 대비 64%를 기록했다. 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의미하며, 항만이 평소의 64%까지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파업 나흘째인 지난달 27일 반출입량이 6208TEU(평상시 대비 17%)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반출입량이 가장 많은 부산항은 평상시 대비 78%까지 회복된 것으로 파악됐다.
시멘트 출하량도 늘고 있다. 이날 시멘트 출하량은 8만2000t으로 시멘트 부문에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지난달 29일(2만1000여t)에 비해 네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하루 18만8000t인 평상시의 44% 수준으로, 시간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국토부는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서 교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날까지 147개 시멘트 운송업체에 대한 현장 조사를 마치고 29개 운송업체에 업무개시명령서를 현장에서 교부했다. 이 중 21개 운송업체가 운송을 재개했거나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 탈퇴 움직임까지
이런 가운데 일부 노조원은 화물연대 탈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4일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시작한 이후 경기 광명의 화물연대 서경지역본부 카캐리어지회 소속 소형 카캐리어(차량 운송 특수 차량) 차주 10여 명이 화물연대 탈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탈퇴 절차가 진행되지 않자 조합원 신분으로 운송 거부에 동참하지 않고 내수 차량을 광명에서 수도권으로 탁송하고 있다. 경북 상주에선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시작된 직후 하림 계열 닭고기 가공업체 올품 제품을 운송하는 운전기사 160여 명 중 100여 명이 화물연대를 탈퇴했다.
정부는 시멘트에 이어 정유까지 업무개시명령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탱크로리(유조차) 운전기사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기 위한 임시 국무회의가 이르면 2일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수도권 주유소 재고가 2~3일치 남은 수준이라 추가 업무개시명령 발동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전국의 품절 주유소는 지난달 29일 21곳에서 이날 오후 2시 49곳으로 늘었다.
화물연대를 제외한 공공운수노조가 이끄는 공공 부문 파업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의 중량급 지부인 의료연대본부 서울교통공사 등이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하면서 파업을 중단했다. 업계에선 공공 부문의 파업이 마무리되면 민주노총이 오는 6일 업무개시명령에 맞서 벌이는 동시다발적 총파업의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파업 투쟁이 끝나면 반드시 응징한다. 지난 6월에도 운송사 두 곳을 들어냈다(시장에서 축출했다).”운송을 재개한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차주들에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본부의 한 지역 간부가 “보복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선 형법상 협박죄 강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운송에 영향을 주는 보복이 현실화하면 업무방해죄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한국경제신문은 화물연대 간부가 BCT 차주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1일 확보했다. 이 메시지엔 “오늘 분명히 협조 부탁과 경고했음에도 (운송 거부 동참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총파업 운송 결과를 취합해 파업 투쟁이 끝나면 분명히 화주사와 운송사를 응징할 것”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 같은 내용의 메시지는 지난달 30일과 1일 10명 이상의 BCT 차주에게 전달됐다.화물연대 간부는 또 “지난 6월 투쟁 후 OO운송사 두 군데를 들어냈고, 이번엔 BCT 화주사와 운송사를 타깃으로 잡는다”며 과거에도 보복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이번엔 무조건 직책을 걸고 잡을 것”이라고 재차 협박했다.지난 6월 화물연대가 보복 대상으로 지목한 지역 운송사 두 곳은 거래가 일시적으로 끊겨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화물연대 간부는 한경과의 통화에서 “우리(화물연대)와 사전 협의하지 않고 운송한 BCT 차주를 대상으로 보낸 문자”라며 “우리에게 긴급한 사안을 설명하면 운송을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운송료가 20년 전과 비슷한데 그때보다 기름값은 급등했지만, 정부가 지원 예산을 삭감해 생계가 막막하다”며 “예전과 달리 유리를 깨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등 불법적인 행위가 거의 없는데도 정부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화물연대 소속 BCT 차량은 1000대가량이다. 3000여 대인 전국 BCT 차량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머지 차들도 보복 가능성 등을 우려해 대부분 운송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일부 비노조 BCT 차주는 경찰차 에스코트를 받으며 시멘트 운송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화물연대가 운송에 나선 BCT 차량 사진을 찍어 증거로 남겨 보복을 예고하고 있다”며 “일부 BCT 차주는 살해 협박 수준으로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또 다른 BCT 차주는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누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지 전부 공유되고 있다”며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차주의 신상정보를 공유하고 보복을 가하기 때문에 화물연대 가입률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법조계에선 화물연대의 협박 메시지가 형법상 협박죄, 강요죄는 물론 업무방해죄에까지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방검찰청 지청장 출신인 김우석 변호사는 “형법상 협박죄, 강요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며 “화물연대가 운송을 막을 경우 일거리를 주는 원청사와 일거리를 받는 운송사에 대한 업무방해죄도 성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협박죄 형량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이다. 강요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안대규/강경주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체감온도가 영하 15도까지 곤두박질친 1일 아침 서울 영등포 쪽방촌. 나이 지긋한 어르신 몇이 20L짜리 난방용 등유를 집안으로 옮기느라 분주히 골목을 오갔다. 이화경 씨(80)는 “지원센터의 등유 공급이 미뤄져서 당장 내일부터 냉골방에서 자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주민은 “화물연대 파업 난리 통에 등유를 구하느라 한참을 돌아다녔다”고 했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본부 파업의 파장이 사회 취약계층의 일상을 할퀴고 있다. 쪽방촌 주민뿐 아니라 건설 일용직 노동자 피해도 극심해지고 있다. 이날 새벽 서울 남구로역 인근에 있는 인력시장에 모인 300여 명 중 절반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갔다. 파업과 함께 시멘트 운송에 차질이 생기고 건설 현장이 멈춰서면서 일감이 끊겼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으로 가는 봉고차를 먼저 타기 위해 여러 차례 몸싸움도 벌어졌다. 레미콘 타설(打設)이 안 돼 당분간 현장 재가동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목공일을 하는 이동화 씨(53)는 “원래 일하던 건설 현장이 파업 여파로 멈춰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나왔다”며 “최근 몇 년 새 일자리 부족이 가장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한국경제신문이 서울 주요 지역의 인력사무소 40곳을 취재한 결과 당분간 일자리가 없다고 답한 곳이 28곳(70%)이었다. 일거리가 있다고 답한 인력사무소도 경력이 아닌 신입은 뽑지 않는다고 했다. 파업 직격탄을 맞은 서울 방배동의 주상복합아파트 현장도 하루 60명 정도 쓰던 인력을 절반으로 줄였고, 둔촌동 둔촌주공 공사 현장 역시 일용직 근로자 채용을 중단했다.파업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악화하면서 일부 화물차주의 업무 복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서민들의 불안한 시선은 여전하다. 이날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총파업 이전 대비 60%대 중반까지 회복됐고 시멘트 출하량도 소폭 늘었다. 한 아파트 건설 현장 노동자는 “파업이 오래가면 등 터지는 건 서민”이라며 “협상이 빨리 타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료 배달 끊겨 키우는 소·닭 굶겨 죽일 판"화물연대 파업의 불똥은 축산 농가로도 튀고 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주요 거점에서 운송을 막으면서 사료 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전북 군산에 있는 닭 10만 마리 규모의 A양계장은 1일 남은 사료를 모두 소진했다. 부패 우려로 열흘치 안팎의 사료를 비축하는데 파업이 8일째 이어지면서 재고가 다 떨어졌다. 농장주 이모씨는 “군산 지역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하던 때만큼이나 농장 운영이 힘든 상황”이라며 “누구를 위한 파업인지, 왜 농장주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경기 남양주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이모씨 역시 소 먹이용 풀 재고가 이틀치밖에 남지 않아 비상이 걸렸다. 이씨는 “사료 가격(현재 5t 트럭 기준 900만원)이 작년의 두 배 이상으로 뛴 데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웃돈까지 주고 소 먹이를 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찮다”며 “자칫하면 소를 굶겨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영원 전국한우협회 정책지도국장은 “시멘트 분야에 내려진 업무개시명령을 사료 운반 등의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배달기사들은 휘발유 대란에 대비해 연료 확보에 나섰다. 일부 기사는 휘발유를 사서 사무실 등에 가져다 두고 있다. SNS 등을 통해 재고가 있는 주유소를 공유한다. 이날 기준 휘발유는 7일분, 경유는 9일분이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이광식/구교범/김우섭/원종환 기자 bumeran@hankyung.com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화물연대에 즉각적인 운송거부 철회를 요청했다. 국민 생활을 위협하고 물류 운송 피해를 가중한다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정식 장관은 1일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로 인한 생산·작업에 차질을 겪고 있는 신반포4지구 재건축 정비사업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오늘 현장을 방문해보니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로 인한 작업 차질로 건설 현장의 근로자들은 물론 국민에게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렇게 얘기했다.한편 공공운수노조 소속 전국철도노조는 오는 2일부터 철도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민주노총도 3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서울과 부산 신항 앞에서 분산 개최하며, 이어서 6일에는 화물연대 투쟁거점과 결합해 전국 동시다발 총파업을 연다는 방침이다.이 장관은 이후 SNS를 통해서도 "복합 경제 위기와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때, 화물연대의 무기한 집단 운송거부와 민주노총의 조직적 연대투쟁은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피해로 귀결 될 것"이라며 "화물연대는 운송거부를 즉각 철회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달라"고 당부했다.이어 "지하철 노조가 어제(11월 30일) 파업을 마무리했듯, 철도노조도 사측과의 적극적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타결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한편 이정식 장관은 이날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야당 의원들과 화물연대 운송거부와 관련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야당 측이 사태 악화의 책임이 화물연대 측과의 대화 노력을 보이지 않은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자, 이 장관이 정부의 강경 대응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다.이 장관은 "협박해 놓고 무슨 대화를 하겠다는 건가"라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갈등 해결 방식이 우리 사회에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한편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철도노조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노사 간 실무교섭 중이며, 진전에 따라 본교섭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이날 오후 노조가 "끝까지 대화와 교섭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문을 내면서, 일각에서는 극적 타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