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방송통신위원회 간 소통이 ‘꽉’ 막힌 상황에서 야권 주도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방송법 개정안)까지 추진되자 새 정부 방송·미디어 정책이 헛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뿐 아니라 새 정부 눈치도 봐야 하는 방통위 실무진들은 “자칫 불똥이 튀기 십상”이라며 새 정부 주요 국정과제에도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새 정부 국정과제 사실상 손놔
8일 정부에 따르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미디어 공공성·공정성 확립은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 과제 중 6번째 과제다. 부동산 세제 정상화(8번), 규제 완화(16번) 등 새 정부 핵심 정책보다도 앞선 과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당시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이사회 구성 및 사장 선임 절차 등 방송관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일 단독으로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킨 방송법 개정안이 이런 국정과제와 직접 연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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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통위는 법 개정과정에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안형환 방통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 측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여야 위원들이 결론을 내려 주시면 그 결과를 존중하겠다”며 정부 입장을 내지 않았다. 안 위원장은 여야 간 쟁점이 치열한 이사회 구성 방식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정부 측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며 피해 갔다. 방통위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국회에 의견을 낸 것은 4년 전인 2018년 12월이 마지막이다.

방통위는 다른 국정과제에 대해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인수위는 △미디어 전략 전담 기구 설치 △방송사업 허가·승인 등 낡은 규제 개선 △ KBS 수신료 제도 개선 등도 방송과 미디어분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새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났지만 이와 관련한 정책은 발표되지 않았다.
◆“文정부 임명한 위원장 어떻게 믿나”
윤석열 정부의 방송·미디어 정책이 멈춰 선 것은 한상혁 위원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 등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정무직에 대해 “현행법과 제도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인사를 하지 말라”는 지시를 실무진에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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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원장은 법률에 따라 보장된 내년 7월까지 임기(3년)를 채우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개혁이라는 민감한 과제를 두고 전임 정부가 임명한 인사가 1년 이상 현 정부와 동거를 하게 되는 셈이다. 국정과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때문이다. 실제 대통령실은 방통위와 평상시에도 일반적인 업무 협의도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위의 한 과장급 관계자도 “새 정부 주요 국정과제를 한 위원장이 최종 검토한다는 걸 대통령실이 꺼리지 않겠냐”고 전했다. 대통령실은 내년도 대통령 업무보고도 서면으로 대체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과 협의를 해야 하는 국장급 이상 인사도 멈춰 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임 정부가 임명한 위원장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냐”며 “위원장이 바뀌지 않는 한 간부급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따라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교체될 것으로 예상됐던 최성호 사무처장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위원장과 임기를 함께 할 것이라는 게 방위 안팎의 관측이다. 통상 1년 6개월을 넘지 않는 자리를 3년 이상 맡게 되는 셈이다.

국장급 인사가 멈춰서자 과장급 이하 실무진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한 위원장의 측근 인사로 찍히면 향후 인사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퍼져 있다는 전언이다.

조직도 불이익을 받는다. 대통령실은 최근 정부과천청사에 위치한 방통위를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방통위의 세종시 이전은 사실상 확정됐다”며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최종 발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통령실은 관련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청사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방통위 직원들은 “위원장이 자리에 욕심을 내면서 힘없는 직원들이 피해를 본다는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한 위원장도 이런 조직 내부 분위기 때문에 한때 사퇴를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민주당 측 인사들이 새 정부 초기 방송·미디어 제도 개편을 우려해 한 위원장의 사퇴를 강하게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위원장이 사퇴하지 않는 것은 방송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명분 때문이며 자리엔 연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다만 지금도 여전히 고심이 많다”고 전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