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권에서는 "휴가는 못 만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야 한다고 촉구한 반면,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을 이례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지난 대선 국민의힘 대권 주자였던 유승민 전 의원은 4일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만나야 한다'라는 제목의 의견문을 통해 "동맹국 미국의 의회 일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미국은 대통령제 국가이지만, 외교 안보는 의회가 초당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라며 "미국의 상·하원 의원,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이 방한해도 역대 우리 대통령들은 대부분 이를 만났다. 격을 따지지 않고 만난 것은 그만큼 한미동맹이 중요했고 이들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인물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서울에 있는 대통령이 만나지도 않는다? 휴가 중이라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며 "대학로 연극을 보고 뒤풀이까지 하면서 미 의회의 대표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고 했다. 전날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함께 대학로의 한 소극장을 찾아 연극을 관람하고 배우들과 식사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도 전날 YTN 방송에서 "(펠로시 의장은) 미국의 중요한 정책 결정 라인에 있는 분이고, 또 권력 서열 3위"라며 "지금의 동북아나 한반도 정세에서 미국의 권력 서열 3위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대통령이 면담하는 것 정도는 제가 볼 때 충분히 휴가 기간임에도 가능하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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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야권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동북아 순방으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이 휩쓸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을 칭찬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펠로시 의장을 슬쩍 피한 건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펠로시를 만나는 건 미·중 갈등에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것"이라며 "나토에 갈 때 걱정하던 최악의 상황은 임시방편으로 비켜 갔다. 아직 외교는 최소한도나마 작동하는 듯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교수도 전날 CBS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이) 대만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안 만나는 걸로 생각이 된다"면서 "안 만나는 게 결과적으로는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펠로시 의장과 전화 통화할 예정이다. 전날 밤 한국에 도착한 펠로시 의장은 이날 김진표 국회의장과 국회 접견실에서 북한 문제, 경제 협력, 기후 위기 등 현안에 대한 회담을 가진 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찾아 장병들을 격려할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앞서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만나는 일정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당초 펠로시 의장 방한 일정이 윤 대통령 휴가와 겹쳤기 때문에 만나는 일정은 잡지 않았다"며 "펠로시 의장과 동아시아 순방 일정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