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국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172석을 쥔 민주당은 다수당이란 지위를 활용해 다음달 3일 법 공포를 목표로 15일 검수완박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입법을 저지하겠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검찰 수사권 조정을 두고 정치권이 왜 이렇게 치열하게 다투는 걸까요.

검수완박, 그게 뭔데?

‘검수완박’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앞 글자를 딴 말입니다.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이 조정이 이뤄졌습니다. 이에 검찰은 부패·경제·선거·공직자·대형참사·방위사업 등 6대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를 하게 됐습니다.

나머지는 경찰이 맡게 됐고,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서만 ‘보완수사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수사권 조정 이전에 있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없어진 것이죠. 이런 상황에 그나마 남은 6대 범죄도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고, 검찰은 기소만 담당하는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게 검수완박 입법의 취지입니다.

민주당은 왜 추진할까?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명분은 ‘검찰개혁’입니다. 한국 검찰이 수사권에 이어 기소권까지 독점하는 등 세계 유례없는 권한을 쥐고 있어 그 힘을 분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국회에서 한 말을 보면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이유가 잘 드러납니다.

“과도한 검찰의 권한, 그것이 기득권을 낳았고 특권을 낳았기 때문에 그 특권을 해체하고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게 검찰개혁의 목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국회가 논의하려고 하는 검찰개혁은 이런 기득권과 특권을 가진 검찰에서 정상적인 검찰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은 단순히 검찰의 수사권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검찰 정상화를 시작으로 경찰개혁을 완성하고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권력기관의 선진화가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이런 취지 아래 민주당은 15일 검찰의 일반적인 수사권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검찰청법에서 6대 범죄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을 삭제한 것이 골자입니다. 민주당은 이달 중 개정안을 통과시켜 다음달 3일 국무회의에서 법 공포가 되도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검수완박, 반대 의견은?

다만 반대 목소리도 거셉니다. 무엇보다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경찰은 지난해 1월 숙원이던 수사권을 70년 만에 가져왔습니다. 검찰이 맡던 대부분 사건을 떠안게 됐습니다. 스스로 사건을 종결할 권한도 생겼습니다. 이것 역시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습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수사권 조정 전까지 주요 특수 사건은 검찰이 대부분 직접 수사했습니다. 일부 경찰이 맡은 사건도 ‘수사지휘’를 통해 수사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만큼 ‘특수 수사 역량과 전문성에 관해서는 검찰이 경찰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를 계기로 시작한 경찰의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도 ‘용두사미’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쌓인 검찰의 수사 전문성과 역량이 ‘검수완박’으로 한번에 사라질 것’으로 법조계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전국 검찰청의 부패범죄를 총괄하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는 14일 “6대 범죄 수사는 내용이 방대하고 쟁점이 복잡해 고도의 전문성과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검수완박으로)마약 밀수, 조직폭력, 보이스피싱 범죄 등 국민의 안전과 서민 보호를 위한 국가적 대응 역량도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한 분리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민주당 주장에도 반대 의견이 있습니다. 2017년 김성룡 경북대 로스쿨 교수가 낸 ‘헌법상 영장청구권 검사전속 규정의 현대적 의미와 검찰개혁을 위한 올바른 개헌방향’ 논문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77%(27개국)가 법률에 검사의 수사권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과 같은 대륙법계 국가들이 검찰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진보정당인 정의당과 대한변호사협회, 참여연대, 한국여성변호사회 등 시민단체도 검수완박에 반대 입장을 낸 상황입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불과 1년여 만에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국민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상당 기간 형사사법에 큰 공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수완박의 진짜 속내?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데에 또 다른 속내가 숨어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전 경기지사에 관한 여러 수사를 맡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비롯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울산 시장 선거 개입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전 지사와 관련해서는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부인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 등이 수사 선상에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검수완박이 되면 이들 검찰 수사가 중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은 14일 “(법안이 시행되면) 현재 진행 중인 대장동 수사, 산자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사건 수사 등 주요 사건 수사가 종결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여러 반대와 우려에도 민주당이 “다음달 3일 법을 공포하겠다”며 검수완박 입법을 서두르는 상황을 보면, 이런 관측에 힘이 더 실립니다. 다음달 10일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이송받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으면 15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빼앗은 수사권을 어디로 보낼지 등 중요 문제에 대안도 마련해놓지 않고, (민주당이) 맹목적인 검찰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0대 국회 당시 민주당은 (검찰)수사권을 완전 박탈할 수 있을 정도 의석을 가졌음에도 6대 중대 범죄에 대해 검찰 수사 범위로 남겨놨다”며 “이유가 뭐겠느냐. 중대 범죄는 당분간 검찰이 수사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반 시민과 무슨 상관?

지금까지 얘기만 들으면, “검수완박이 평범한 시민과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사 사법체계를 바꾸는 일은 우리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지난해 1월 수사권 조정이 된 뒤로 일선 경찰서는 업무 과부하를 겪고 있습니다. 사건이 경찰에 쏠리다 보니 서울의 일선 경찰서에서는 수사관 한명이 사건 40~50건을 담당할 정도라고 합니다.

지난해 경찰의 사건 처리 기간은 건당 61.9일로 전년(53.2일)보다 8.7일이 늘었습니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비율은 10.9%로 전년(4.6%)보다 두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이 받는 수사 서비스 품질은 나빠졌다는 의미입니다.

한 일선서 수사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수사권 조정이 된 뒤로 오히려 잡무만 늘었습니다. 법률 검토나 판례 적용은 검사들이 잘하는데, 아무래도 경찰이 이런 것도 신경쓰다 보니 근무 강도가 너무 강해졌습니다.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가 내려지면 수사를 다시해야 하는데, 이 늘어난 업무를 처리할 인력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민주당이 이달 내 법률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하는 만큼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됩니다. 15일 법안 발의를 한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 통과 후 이달 말 열릴 예정인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열겠다는 방침입니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의 5분의 3인 180명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근데 민주당 의석 수는 172석입니다. 무소속 의원들의 지원을 모두 끌어내더라도 정의당의 협조 없이는 필리버스터를 멈출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이 때문에 민주당은 '회기 쪼개기'를 검토할 것으로 보입니다. 회기 쪼개기는 임시국회 회기를 30일이 아닌 며칠 단위로 소집하는 것입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는 자동 종료됩니다. 이때 안건은 다음 회기에 자동 상정되는 데 이를 활용해 법률을 통과시키겠다는 전략입니다.

다만 박병석 국회의장이 순방이 변수입니다. 국회소집 및 사회 권한은 국회의장이 갖고 있는데, 박 의장은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북미 순방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순방 일정을 바꾸거나 사회권 양도가 없으면 23일이 오기 전에 입법을 끝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새 정부 출범을 한달여 앞둔 지금, '민생 챙기기'와 '협치', '화합'이란 단어는 여전히 여의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