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고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던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세무사법 개정안’ 등 46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야 합의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결과정을 밟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된 첫 사례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47명 가운데 찬성 215명, 반대 9명, 기권 23명으로 통과됐다. 선진화법 86조는 법사위가 별다른 이유 없이 법안이 회부된 날부터 12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의 소관 상임위원장이 여야 합의를 통해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장기 계류돼 있었다. 조경태 기획재정위원장이 지난달 17일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해달라고 정세균 의장에게 요청했고 이날 본회의에 상정돼 처리됐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이날 법 개정에 반발해 국회 정문 앞에서 변협 임원들과 삭발식을 했다. 변협은 성명서에서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을 박탈하는 법 개정안은 변호사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고 국민 선택권을 박탈하며 로스쿨 제도 도입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변호사들의 주장을 외면하고 개정법을 무리하게 통과시킨 의원들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변협 집행부와 전국 2만4000여 명의 변호사들은 개정 세무사법 폐기를 위해 무한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반면 한국세무사협회 등은 “1시험 1자격증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공짜 자격증제도는 철폐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아이코스·글로 등 궐련형 전자담배에 붙는 지방세를 일반담배의 90% 수준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안’도 가결됐다. 지난달 9일 궐련형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를 올리는 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에 따른 후속 조치다. 이에 따라 궐련형 전자담배 한 갑 기준 현행 528원의 담배소비세는 897원으로, 232원이었던 지방교육세는 395원으로 각각 오른다. 이외에도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원자로 시설 등에 대해 단층조사를 하는 내용의 ‘지진·화산재해대책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여야 쟁점 법안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국가정보원 개혁법, 규제프리존법 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여야는 오는 11~23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쟁점 법안 처리에 나설 계획이지만 견해차가 커 전망은 밝지 않다.

정 의장은 이날 본회의 법안 처리를 마무리하며 의원들에게 “현재 우리 국회에는 7600건의 법안이 여러분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며 “(다음 임시국회에서) 법안 심사를 적극적으로 해주길 당부한다”고 요청했다. 이어 “국회는 열려 있는데 법안 심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박종필/이상엽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