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빚이 20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최대다. 정치 논리 탓에 전기요금 현실화가 미뤄져 부실이 더 커졌다. 천문학적 부채 때문에 한 달 이자만 2000억원에 이른다. 2020년 말 132조원이던 부채가 불과 2년여 만에 200조원대로 급증한 것은 빗나간 탈원전 정책 탓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 연료가격 급등에도 5년 내내 전기요금을 못 올리게 했다. 포퓰리즘 정치에 휘둘려 한전은 멍들어왔다. 1년3개월을 보낸 현 정부도 부실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나마 작년부터 전기요금을 어느 정도 현실화한 데다 최근 국제 유가가 안정되면서 한전의 ‘역마진’ 구조가 다소 해소되긴 했다. 하지만 올해도 연간 7조원의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대로 가면 금융시장에도 적잖은 불안 요인이 된다. 한전이 채권시장을 교란·왜곡하고, 한전 채권은 발행 자체가 어려운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는데, 올해 적자를 감안하면 내년 채권 발행 한도는 70조원가량으로 확 줄어들 수 있다. 지난해 말 한전법 개정을 통해 채권 발행 한도를 힘겹게 늘렸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일회용 땜질식 대처로 갈 수는 없다.

기후변화 경고, 에너지 전환 기류 등에 따라 에너지 가격의 불안정성과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전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기요금부터 현실화해야 한다. 정치 논리가 아니라 ‘원가 연동’ ‘수요 적기 반영’ 같은 시장 원리에 따른 가격 결정 시스템 도입이 불가피하다. 한전 스스로도 고강도 긴축 경영, 한전공대 문제 등을 포함한 보다 적극적인 자구책을 내놔야 한다. “내 임기엔 못 올린다(NIMT)” “선거 앞두고는 인상 못 한다”는 식의 나쁜 정치가 국가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는 국내 최대 공기업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런 무책임한 정치가 계속돼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