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 327곳을 대상으로 지난 15일까지 회계장부 비치 증빙 자료를 요청했지만, 60% 이상이 이를 조직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는 회계장부 표지 한 장과 속지 한 장 사본 등 최소한의 증빙 서류를 요구했지만, 63%인 207곳이 아무것도 안 내거나 달랑 앞표지만 제출했다. 특히 민노총 산하 노조의 거부율은 75%에 달했다. 자료 제출 시한 하루 전인 지난 14일 양대 노총 위원장이 만나 “노동 탄압”을 들먹이며 고용부 요구를 거부할 것을 하달한 데 따른 것이다.

고용부의 자료 제출 요구는 노동조합법에 적확히 근거한 것이자, 노조 회계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997년 제정된 노조법은 회계장부 비치 의무화(제14조), 회계 결산의 공표 및 조합원 열람 보장(제26조), 행정관청의 요구에 따른 보고 의무(제27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번 자료 점검은 노조가 회계장부를 비치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절차에 불과한 것인데도 노조 단체들은 이마저 거부하고 있다.

노조의 회계정보 공개는 국제적으로도 일반화돼 있다. 미국은 노조에 회계연도 종료 시점으로부터 90일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회계보고서를 정보망에 공개해 조합원은 물론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규정 위반에 대한 조사 권한도 갖고 있다.

양대 노총이 회계장부 제출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깜깜이 회계’를 자인하는 꼴이다. 매년 수십억~수백억원을 조합비로 걷어 쓰는 대형 노조의 회계 공개는 투명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MZ세대가 주축이 된 노조들은 조합비 수입과 지출 내역을 1000원 단위까지 명시해 매달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지 않은가.

대형 노조 단체들이 노조법을 무시하는 것은 과태료가 5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용부는 노조의 조직적 거부에 대해 공무집행 방해나 범죄 교사 등으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대응할 필요가 있다. 또 3·4분기로 예정된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 구축도 차질 없이 이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