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우는 닭 얻고 키우던 닭을 잡다
(得早鳴鷄烹家中舊鷄)


울지 못하는 놈 잡아먹고 잘 우는 놈 기르노니
울기만 잘해도 속이 뻥 뚫리도다.
밤하늘 은하수로는 새벽 알기 어렵고
바람결 종루로도 시각 다 알 수 없어라.
베갯머리 근심 걱정 자꾸만 기어들어
내 가슴 시름으로 편치 못하더니
이불 끼고 뒤척이며 잠들지 못할 적에
꼬끼오 첫닭 소리 듣기에도 반갑구나.


* 성현(成俔·1439~1504) : 조선 초기 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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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의 아침 시편] 울지 못하는 닭과 나무로 만든 닭
이 시를 쓴 성현은 조선 초기 문신입니다. 지금의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근처에 있는 약전마을에 살았지요. 그도 여느 집처럼 마당 한쪽에 닭을 키웠던 모양입니다.

남의 병아리 지극정성 키운 의계(義鷄)

첫 구절의 ‘울지 못하는 놈 잡아먹고 잘 우는 놈 기르노니/ 울기만 잘해도 속이 뻥 뚫리도다’라는 표현부터 잔잔한 웃음을 짓게 하는군요. 닭이 일찍 울어야 제 역할을 하는데, 울지 못하니 그놈은 잡아먹고 잘 우는 놈을 키운다는 얘기죠.

예부터 닭에 관한 예화는 많습니다. 그중에는 의계(義鷄) 얘기도 있지요.
어미닭 한 마리가 병아리들을 부화시켜 놓고 금방 죽고 말았습니다. 솜털 같은 병아리들은 추위에 떨며 삐약삐약 울었죠. 이를 본 다른 암탉이 기진맥진한 녀석들을 불러 모으고는 날개로 감싸 밤새 품어줬습니다. 그랬더니 다음날 모두 기사회생했다고 해요.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병아리들을 지극 정성으로 키운 이 암탉을 의계라 부르고 잡아먹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가 조선 중종 때 김정국의 『사제척언』에 나옵니다.

이병철 삼성 회장이 늘 곁에 둔 목계(木鷄)

『장자』에 나오는 목계(木鷄·나무로 깎아 만든 닭) 얘기도 유명하죠.
기성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키웠는데, 열흘이 지나 “이제 싸울 수 있겠는가?” 하자 “안 된다”며 “지금은 허세만 부리고 교만하며 제 힘만 믿는다”고 했습니다. 열흘 뒤 다시 묻자 “다른 닭을 보면 당장 덤벼들 것처럼 한다”고 했고, 또 열흘 뒤엔 “다른 닭을 보면 노려보면서 성난 듯이 한다”고 했지요.

또다시 열흘이 지나 재삼 묻자 그때야 “거의 됐다”며 “싸울 닭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 내색을 하지 않아 멀리서 보면 나무로 만든 닭 같다”고 했습니다. 상대 닭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도망가버리는 경지에 올랐으므로 비로소 완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거실에 목계를 걸어 놓고 늘 자신을 비춰봤다는 얘기가 예사롭지 않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

옛사람들은 닭을 다섯 가지 덕(五德)을 갖춘 동물로 여겼습니다. 머리의 벼슬이 관을 닮아 문(文), 발에 붙은 며느리발톱이 강해 무(武), 적을 만나면 용감히 싸워 용(勇), 먹을 게 있으면 동료를 불러 같이 먹어 인(仁), 정확히 새벽에 울어 신(信)의 덕을 갖췄다고 했지요.

그런데 5덕 아니라 6, 7덕을 겸했으면 뭐하겠습니까. 그놈의 닭이 시간 맞춰 울 줄 모른다면 소용없는 법이지요. 더구나 하늘이 흐려 별자리를 볼 수 없고 세찬 바람에 종루 소리도 들을 수 없을 때, 첫닭 우는 소리까지 듣지 못한다면?

의계(義鷄)나 목계(木鷄)처럼 시대를 초월해서 교훈을 주는 닭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니, 일찍 우는 닭을 얻고서 키우던 닭을 삶아 먹었다는 성현의 시제(詩題)가 더욱 의미심장한 은유로 다가오는군요. 우리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새벽이 반가울 정도로 긴 밤이 괴로웠다는 설명 또한 새겨들어봐야 할 대목이겠지요?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