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가 어제 본회의를 시작으로 100일간의 회기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는 오늘 639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정부는 긴축 편성을 했다고 하지만, 여야는 철저한 심사를 통해 선심성이 스며든 지출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 걸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그간 보여온 예산 심사의 고질적인 병폐를 근절해야 한다.

우선 졸속 심사, 지각 처리 되풀이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 정부 예산안이 9월 초 국회로 넘어오지만 여야는 국정감사 등에 밀려 거들떠보지 않다가 11월이 돼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나마 종합 질의 일정과 정쟁 등으로 실제 심사 기간은 매년 10여 일에 불과한 실정이다. 시한에 쫓겨 여야의 원안 통과와 대폭 삭감이 맞서다가 적당히 절충하는 게 관행이 됐다. 애초 꼼꼼한 심사는 불가능한 구조다. 벼락치기 심사를 하다 보니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법정 기한(12월 2일) 내 예산안을 처리한 경우는 두 번뿐이다.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예산안 자동 부의(附議) 제도’를 도입했지만 법 어기기는 예삿일이 됐다. 정부 예산안이 넘어오면 바로 심사에 들어가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처리 시한에 몰리면 여야는 예산조정소위원회 내 법에도 없는 ‘소(小)소위’를 가동한다.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최소 인원으로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지만 주고받기식 흥정과 담합의 장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국회도 아닌 호텔 방에서 ‘그들만의 나눠먹기 잔치’가 벌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소소위는 의원들의 민원 창구로도 활용된다. 굳이 소소위 가동이 필요하다면 모든 논의 내용을 회의록에 남겨 투명하게 공개해야 마땅하다.

민원성 쪽지예산도 끊어야 할 구태다. 예산 증가분에서 쪽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에 달한다. 쪽지예산은 엄밀한 사업 타당성 조사를 통해 필요한 곳에 투입해야 한다는 예산 배정의 원칙을 훼손한다. 정부 동의를 제대로 받지 않아 법 위반 소지도 크다. 쪽지예산이 반영되면서 국방 등 필요한 분야의 예산이 깎이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민원을 넣는 의원들을 공개하고 책임을 묻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툭하면 예산안과 다른 사안을 연계하는 전략도 없애야 할 병폐다. 나라살림 심사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지 정쟁의 볼모로 삼을 일이 아니다. 올해도 야당이 예산안 통과를 세법 개정안과 연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와 걱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법인세율 인하를 겨냥, “초대기업 세금을 왜 깎아주나. 영구임대주택 예산을 감축할 만큼 급한 일인가”라며 “비정한 예산”이라고 해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 창출을 유도할 법인세율 인하와 서민 예산을 연계하는 게 황당하다. 여야 모두 당리당략적 접근을 벗어나 오로지 소중한 혈세가 한 푼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데 예산 심사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