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독재자의 아들’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의 최대 선거전략은 소셜 미디어였다. 그는 다른 후보들이 유세차를 이용해 전국을 도는 전통적인 선거운동을 하는 사이 유튜브와 틱톡, 페이스북을 통한 SNS 캠페인에 주력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자신이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소셜 인플루언서다. 틱톡 팔로어 120만명, 유튜브 구독자 200만명에 페북 팔로어는 530만명이 넘는다. 이같이 강력한 네트워킹 인프라를 활용해 무겁고 어려운 이슈 대신 가족, 사회공헌 같은 따뜻한 주제와 필리핀의 밝은 미래 청사진을 담은 재치 있는 콘텐츠를 전파했다. 여기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같은 경제공약이 가세해 유권자의 50%가 넘는 30대 미만 젊은 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이쯤 되면 ‘사탕’이라는 뜻의 그의 애칭 ‘봉봉’에 걸맞은 부드러운 인성과 디지털 마인드로 충만한 미래 지향적 정치인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러나 피는 피다. 그의 아버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누구인가. 집권 21년 동안 필리핀 정치를 도륙하고, 나라 살림을 거덜 낸 그 악명높은 압제자 아닌가. 마르코스가 1972년 계엄령 선포 뒤 구금시킨 민주 인사가 7만여명, 그중 3000명 이상이 고문으로 죽였다. 자신의 최대 정적인 베니그노 아키노 2세는 공항에서 귀국하자마자 암살했다(그 덕에 마닐라 국제공항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된 1965년 8억달러였던 필리핀의 국가 부채는 ‘피플 파워’로 권좌에서 쫓겨난 1986년 280억 달러로 급증했다. 부인 이멜다와 함께 맘껏 부정 축재해 자행해 해외로 빼돌린 재산이 100억달러로 추산된다. 하와이로 망명한 뒤에도 마르코스 일가는 돈을 펑펑 쓰며 대통령 때와 비교해 나으면 나았지, 조금도 못하지 않은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SNS 전략은 마르코스 재집권을 목표로 10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돼 온 것이다. 검증 자체를 시도할 수 없는 가짜뉴스들을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페북에 실어 나르는 일들이 차근차근 진행돼 왔다. 중세 점성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오래전부터 마르코스 주니어의 대통령 당선을 예상했다거나, 마르코스 가문이 재집권하면 막대한 규모의 황금을 국민들에게 나눠줄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내용 등이다. 소셜 인플루언서와 ‘키보드 전사’들을 고용해 이런 얘기들을 퍼뜨린 덕에 필리핀의 가난한 지역에서는 신화처럼 믿어지고 있다. 또 부친 집권 때가 필리핀의 황금기라는 역사 왜곡에도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마르코스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필리핀 최고 영웅이었고, 그가 대통령 재임 시 필리핀 군대가 아시아에서 가장 막강했다는 허구들이다. 마르코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젊은이들은 거부감이 없어 세뇌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SNS질과 콘서트장 같은 선거 유세에는 열심이었지만,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TV 토론회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SNS를 통한 가짜 뉴스 전파, 역사 왜곡, 이미지 조작을 보면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대선 기간에 8만여개 기사, 141만건 댓글을 대상으로 1억건 가까운 기사 공감 조작이 자행됐다. 이런 엄청난 불법을 배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 이 일을 공모한 대통령의 실세 측근은 자신들이 세운 대법원장 휘하의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는데도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 뻔뻔한 말을 내뱉으며 끝까지 잡아떼고 있다, 그런 그를 임기 말에 사면하지 못해 조바심이 났던 대통령.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필리핀 인구의 50% 이상은 가짜 뉴스에 대한 필터링 능력이 없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인류 최고의 지적 발명품 인터넷. 이 역시 악마가 숨어 살기에 딱 좋은 구조다.

윤성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