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 고위 관계자가 어제 한 라디오에 출연해 “새해에는 달라진 일상으로 갈 수 있다”며 “달라진 일상회복 상황에서 마스크를 벗는 시기가 새해 중에 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국민 모두가 염원하는 바다. 그러나 이런 말이 영 미덥지 못한 게 국민 다수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동안 대통령을 비롯 정부 당국자들이 ‘일상 회복’을 수없이 되뇌었지만, 모두 ‘희망고문’이었을 뿐이란 학습효과가 각인돼 있어서다.

정부가 그토록 내세우던 ‘K방역’은 중국에서도 놀림감이 될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전문가 견해를 바탕으로 한 ‘과학방역’보다 정권 치적 홍보에 치중하는 듯한 ‘정치방역’이 우위에 있었던 탓이다. 정부의 ‘전문가 무시’ 습성은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주요 고비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돼 왔다. 대만이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인 신속·과감한 대처로 세계 최고 코로나 청정지역이 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최근 1주일간 하루 평균 확진자 수 차이(한국 5141명, 대만 19.3명)가 보여주는 대로다.

백신 도입 과정에서도 과학을 경시하는 중대 오류를 범했다. 전문가들은 진작부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효능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지만, 백신 접종률이란 수치 목표에 급급한 정부는 AZ 백신을 지난 5월 고령층에 집중 투입했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화이자, 모더나, AZ 백신을 임상시험한 뒤 AZ의 효능이 화이자의 5분의1밖에 안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 코백스(COVAX)를 통해 선심 쓰듯 개발도상국들에 넘겼다.

정부는 백신 접종률 70%에 도취돼 부스터샷도 실기했다. 지난 11월부터 위드 코로나에 들어갔을 때도 의료계에선 해외 재창궐, 의료인력 부족 등을 들어 우려 목소리가 컸다. 결국 그런 우려는 확진자와 위중증·사망자 폭증 및 의료시스템 마비 사태로 현실화돼 44일 만에 거리두기 강화로 유턴하고 말았다.

K방역은 국민의 자발적 협조와 희생을 토대로 유지돼 왔지만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서 국민 인내심도 거의 바닥났다. 증상 여부에 관계 없이 코로나에 걸리면 절대 안 된다는 식으로 확진자 숫자에 급급해하는 식으로는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4단계 거리두기가 또 2주 연장됐지만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진정 굵고 짧게 끝내려면 방역정책 최종 결정권을 좌고우면하는 중대본이 아니라 질병관리청으로 넘겨야 할 것이다. ‘올해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고 희망고문만 할 게 아니라, 철저한 과학방역으로, 그 말이 현실이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