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을 맞아 신용카드 수수료가 또 강제 인하됐다.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이미 0%대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어 카드 수수료를 찔끔 더 내린다고 무슨 실질적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민생 지원을 구실로 만만한 카드사들의 팔을 비틀어 선거용 생색내기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수수료 인하 내역을 보면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은 0.8%에서 0.5%로 떨어졌고, 연매출 △3억~5억원은 1.3%에서 1.1% △5억~10억원은 1.4%에서 1.25% △10억~30억원은 1.6%에서 1.5%로 각각 내려갔다. 카드 가맹점 중 연매출 3억원 이하는 75%(220만 개)에 이른다. 이번 인하로 4700억원이 경감된다지만 자영업자 개개인이 체감하는 혜택은 미미할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그제 광화문으로 뛰쳐나온 것은 카드수수료가 높아서가 아니다. 끝이 안 보이는 영업제한, 방역 책임 떠넘기기, 이로 인한 매출 급감 등으로 벼랑 끝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정부의 어설픈 방역으로 연말 대목을 날린 분노, 방역패스를 급작스레 도입한 탓에 손님을 놓쳐 버린 원망 등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가뜩이나 이 정부 들어 최저임금 급등으로 고통받던 터에 2년에 걸친 코로나와 방역실패까지 더해져 이들을 극한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자영업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적절하고 두텁게 지원해줘야 한다. 그 방법은 정부의 강제조치로 피해를 입은 데 대해 손실보상금 등 정부 지원금으로 해결해야지 카드사만 쥐어짤 일이 아니다.

더구나 카드 수수료를 내릴수록 소비자 혜택이 감소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카드사가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2018년 382만 개였던 무이자 할부 가맹점 수가 지난 9월 315만 개로 67만 곳(17.5%) 감소했다. 반대로 카드 연회비는 최근 2년 새 10%가량 올랐고, 할인혜택이 많은 일명 ‘혜자 카드’가 대부분 단종돼 소비자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신용카드 수수료를 결정하는 나라다. 가격 통제의 부작용은 카드 수수료와 소비자 혜택 간의 역설에서 잘 나타난다. 카드 수수료는 금융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자영업자 표심 잡기에 용이한 수단으로 인식돼 지난 12년간 이미 13번이나 인하됐다. 카드 수수료로 생색내는 구태를 언제까지 반복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