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 키우면 국회 불려가 '고해성사' 강요받는 현실
김 의장은 “성장에 취해 주위를 둘러보는 것을 간과했다”며 납작 엎드렸다. 이어 “(장난감·문구 판매사업은) 제 생각에도 옳지 않은 방향”이라며 “이런 사업에는 절대로 진출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급기야는 “카카오 등 큰 기업은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만든 게 모두 자영업자 같은 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을 편취한 결과는 아닐 텐데, 김 의장으로서도 항변하긴 어려운 분위기였다. 경제약자 편을 든다며 감정과 정서만 앞세우는 한국 정치권의 수준과 기업이 처한 냉엄한 현실 앞에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기업인의 억지 ‘고해성사’가 이어지는 동안, 경제와 비즈니스 현장에서 지켜져야 할 시장중심 원칙과 경쟁원리는 와해되고 만다는 점이다. 수수료 규제가 선(善)한 규제처럼 보일지 몰라도 후발사업자가 가격 경쟁력을 가질 여지가 줄어 기존 대기업을 더 유리하게 할 수 있다.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의 지배력 남용 여부도 경쟁시장의 특성상 판단이 쉽지 않고 엄밀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무도 제정 논의가 시작된 플랫폼 공정화법,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 등 법제에 따르면 될 일이다.
그런데 기업인을 먼저 국감에 불러 군기를 잡고, “명심하고 약속 지키겠다”는 다짐을 종용하는 건 순리가 아니다.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가 한국 법인의 모든 공식 직위에서 물러난 것도 이런 리스크를 염려한 탓으로 볼 수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기업이 성장하려는 욕구를 가질 수 있을까 싶다. 기업이 더 크려는 생각을 포기한 ‘피터팬 증후군’이 범람하는 이유다. 이래 놓고 세계와 경쟁하는 유니콘기업 몇 개 만들자고 하고, ‘OO 선도국가’라는 비전을 맨날 선포해봐야 헛수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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