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북관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상식적이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 비핵화가 이미 진전을 이뤘고, 김정은이 비핵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답변했다. 북한이 노동당대회에서 ‘비핵화’는 거론도 않은 채 ‘핵’을 36차례나 언급한 게 바로 지난달이다. 대사급 탈북자가 CNN에 나와 핵 포기 가능성을 일축한 것도 며칠 되지 않았다. 정 후보자의 진단과 전망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구심이 든다.

문재인 정부가 4년이 되도록 비핵화에서 왜 성과를 못 냈는지 정 후보자 말을 보면 알 만하다. 핵무기에 매달리는 김정은의 속내와 북한 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모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비핵화 의지를 믿는 근거로 자신과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그렇게 말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수십 년간 북한의 온갖 행태를 봐왔으면서도 진정 그렇게 믿는다면 실망스럽다.

설령 남북 안보협의 테이블이나 관련국이 함께하는 핵폐기 협상 무대로 북한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덕담’이라 해도 터무니없다. 날로 발전해온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수준을 볼 때 상황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 유엔 제재가 여전한 판에 효과도 없는 ‘감성적 북한 감싸기’에 매달린다는 잘못된 메시지만 국제사회에 던질 뿐이다. 그의 답변 직후 나온 미국 논평을 봐도 그렇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국제 안보·평화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북한을 두둔한 정 후보자를 반박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교부 장관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이 핵 문제에서만큼은 대화든 담판이든 미국과 하겠다는 것도 오랜 고집이다. 그만큼 북핵 해법에서는 치밀한 한·미 공조가 중요하다. 대미 외교 경력이 있는 그가 외교 수장에 기용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답변을 돌아보면 미국 쪽에서 ‘동맹관계’에 의구심을 던질 내용이 적지 않다.

여러 번 양보해 통일부 장관이 북한 입장을 다소 헤아려주는 것은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교부 장관쯤 되면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 시각도 냉철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북한은 미사일 시험뿐 아니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공개 폭파하고 서해에서는 민간인을 살해·유기하는 등 온갖 도발까지 일삼고 있다. 정 후보자가 외교부를 맡게 되면 미국과 공조를 이뤄낼 수 있을지, 국제 외교무대에서 북한을 어떻게 감싸고돌지 모두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