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파리에 간 에밀리는 어떻게 될까?
최근 몇 주간 가장 흥행몰이 한 드라마가 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미국의 마케팅 에이전시에 근무하는 에밀리라는 직원이 회사가 인수한 프랑스 회사로 1년 동안 파견근무를 가서 겪는 문화적·업무적 체험이 다양한 먹거리, 패션, 사랑과 함께 잘 버무려진 수작이다.

에밀리는 철저한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를 상징하는 밀레니얼 Z세대의 직장인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빠르게 소통하고 비즈니스를 위한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실행에 옮긴다. 트렌드를 비즈니스와 바로 결합시키고 그것이 구태의연한 사고와 부딪히면 대놓고 좌절하고 그것을 또 바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한다. 하지만 파리는 대놓고 에밀리를 지적한다. 전통과, 문화와, 깊이와, 이해 없이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고.

4차 산업혁명 또는 디지털 혁신. 유럽에서 출발해 꽃은 미국에서 피웠다. 전 세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 중 절반 이상이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했다. 디지털과 모바일로 세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변혁은 왜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에서 꽃을 피웠을까. 왜 파리는 에밀리를 애송이라고 조롱하면서도 소심하게 감탄했을까.

미국식 문화와 자본주의. 규제를 최소화해 기업들의 새로운 도전과 자유로운 경쟁을 제약하지 않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다. 스타트업의 빠른 움직임과 결단에 기존의 거대 기업도 언제든지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서로를 자극하며 혁신의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 인재의 이동도 자유롭다. 오늘 회사를 관두고 내일 경쟁사로 이동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기업과 인재 모두가 발전을 가속화한다.

무엇보다 실리콘밸리는 실패에 관대하다. 당장 보상이나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아도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인재들이 있다. 그들은 실패 자체를 경력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빠르게 실패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고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함께 균형을 이루며 거대한 플랫폼을 형성했다.

유럽은 속도의 가치에 앞서는 전통과 문화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영국 영어를 대표하는 셰익스피어의 글과 미국 영어를 대표하는 헤밍웨이의 글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영국, 독일, 프랑스 전통 기업들의 차이로 나타난다.

하지만 2020년.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경험했다. 빠른 속도와 변화의 미국도, 전통과 깊이의 유럽도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는 재편될 것 같다. 코로나19에 비교적 잘 적응한 아시아 국가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아시아 국가들이 전통과 문화의 깊이에 더해 빠르게 디지털 혁신의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