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증가하는 자살, '유명인 효과'만 되뇌는 정부
서울 종로에서 20년 넘게 고깃집을 운영해 온 이모씨 주변에선 지난해 5건의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동대문 시장과 세운상가 등에서 일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자영업자들이다. 이씨는 이런 사연을 기자에게 전하며 “주변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경찰은 단순히 신변 비관이라고 조사해 간다”며 “한계선상에 몰린 자영업 관련 대책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2일 지난해 자살 통계 관련 설명자료를 냈다. 지난해 총사망자 수는 29만5110명으로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자살자는 1만3799명으로 2018년보다 129명(0.9%) 증가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를 나타내는 자살률도 26.9명으로, 2018년(26.6명)보다 0.3명 높아졌다. 2018년 자살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 뛰었는데, 지난해에도 자살 증가 추세가 이어진 것이다.

복지부는 설명자료에서 이처럼 자살자가 늘어난 원인에 대해 ‘유명인 자살에 따른 영향’ 하나만 꼽았다. 경제 상황에 따른 영향은 언급이 없었다. 식당주인 이씨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정부 설명이 맞는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인 한국의 자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치인과 연예인 등 이른바 유명인들의 정신건강을 중점 관리하면 된다. 하지만 유명인 자살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정부 대책은 특별히 없다. 정부도 스스로의 분석을 믿지 않는다는 방증일 수 있다.

기자는 이날 복지부와 함께 설명자료를 작성한 중앙자살예방센터, 중앙심리부검센터 등의 전문가 설명을 들어봤다. 역시 이들은 최근 2년간 자살 증가에 대해 다른 요인을 제시했다.

한 전문가는 “자살률 증가와 가장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통계가 상대적 빈곤의 악화”라며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악화된다고 느낄 때 강한 정신적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2018년 말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23만8000원으로 전년보다 17.7% 감소했다. 이에 따라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 간 소득 격차는 5.47배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에도 2분기에 관련 지표가 역대 최악 수준을 나타내는 등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담당자는 이런 원인을 말하길 꺼린다. 대통령 지지율과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도 자살자 증가를 들어 정부를 비판하기가 껄끄럽다. 누군가의 비극을 정쟁화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 냉정하게 원인을 직시하고 대책을 강구할 용기는 어느 쪽도 없다. 그러는 사이 내일도 38명 안팎의 국민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