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걸면 걸리는’ 식의 독소조항을 담은 ‘일감몰아주기 심사지침’을 추진 중이어서 경제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규제 대상 사업의 기준을 극히 주관적이고 불투명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익을 못 내는 영업권이라도 사후적으로 많은 이익을 낼 것이라는 합리적 예측이 가능할 때는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 기회에 해당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사후적’ ‘많은’ ‘합리적 예측’ ‘상당한’ 등 객관성이 결여된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공무원이 자의적 잣대로 기업을 규제할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심사지침에는 공정거래법에 없는 ‘제3자를 매개로 한 간접거래’까지 규제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또 판례를 무시하는 조항도 포함시켰다. 경제계에서는 “공정위가 법률은 물론 법원 판결까지도 무력화하려 든다”고 지적하고 있다. 위임 입법의 한계 내지는 법률 유보의 원칙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가 이런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총수 일가는 끊임없이 일감 몰아주기를 획책하고 있으니 약간의 기미만 보여도 가차 없이 처벌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기업 성악설(性惡說)’이다. 이런 편견을 가진 것은 공정위뿐이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 등 현 집권세력 전반에 퍼져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노동개혁을 백지화하고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한 것도, 법인세를 올린 것도 모두 기업의 몫을 빼앗자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기업과 대주주의 손발을 묶으려는 것도, 국민연금으로 경영권을 위협하는 것도,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주회사 규제, 출자 규제는 물론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대기환경보전법 등을 통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그 뿌리는 ‘기업 성악설’에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정책이 기업뿐 아니라 경제 전체를 망가뜨리는, 자해적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온갖 규제로 손발이 꽁꽁 묶인 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설비투자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이 지난해 11월부터 11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인 이유다. 매출 1조원 이상 30대 기업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54.2% 줄었다. 국내 기업 세 곳 중 한 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업의 엑소더스도 봇물이다. 올해 2분기 해외 직접투자액은 1분기에 이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분기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가 전년 대비 38.1% 줄어든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일자리 감소는 다시 소비와 투자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급기야 1%대로 추락할 것이 유력해지는 이유다.

정부는 재정을 쏟아붓는 데만 몰두할 게 아니라 기업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기업 기(氣) 살려 투자를 활성화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