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반쪽 행사' 우려되는 제주 국제의학학술회의
니스, 올랜도, 애너하임, 세 도시의 특징은? 니스는 남프랑스 지중해변의 대표적 휴양지고, 올랜도와 애너하임은 미국을 대표하는 테마파크 디즈니월드와 디즈니랜드가 있는 리조트 도시다. 이들 도시는 필자가 임원으로 있는 국제 학술단체의 학술대회와 회의, 관련 제약·의료기기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다. 국제척수손상학회, 세계재활의학회, 국제장애아동학회연합 등이다. 누가 보더라도 공신력이 있는 국제 의학학술단체들이다.

의학학술회의는 해당 분야 학문 발표의 장이자 제약·의료기기 등 관련 산업의 전시장 역할을 한다. 새로운 학문 연구 성과를 교류하는 것 못지않게 세계 제약·바이오산업의 최신 정보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이고 민간 외교도 활발히 펼쳐진다. 기업들이 전시장에서 합법적으로 자사의 기술력을 홍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관련 산업의 전장(戰場)이기도 하다. 의사와 연구자들은 한 곳에서 첨단 글로벌 제약·바이오 관련 업체와 직접 교류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런 행사가 앞서 말한 컨벤션센터가 있는 휴양 도시에서 개최되는 이유는 더 많은 참가자를 전 세계에서 유치하기 위함이다. 학술 행사라고 해서 대학, 연구소같이 업무의 연장선상인 장소에서 열리는 것보다 참가자들이 머리도 식히고 학문적인 교류도 좀 더 밝은 분위기에서 할 수 있도록 휴양 관광도시, 리조트 도시에서 하는 것이다. 각 도시가 앞다퉈 컨벤션센터를 짓는 것도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의학학술회의는 마이스산업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제학술 행사를 국내에 유치하는 경우 한국관광공사가 다양한 지원을 해준다. 컨벤션 시설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 못지않은 지원을 한다. 그만큼 국제 학술대회, 특히 의학 관련 행사는 한국 마이스산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관광 수입 등 경제적인 측면 외에도 국내 산업의 기술 발전과 국제화를 견인하는 등 사회·문화적 파급효과 또한 상당하다. 한국에도 제주, 부산, 인천 송도 등 자연환경이 좋고 외국인이 선호할 만한 아름다운 곳에 컨벤션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특히 제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비자 면제 지역이기도 해 중동, 아시아 국가 참가자들이 선호한다.

그런데 국제 의학학술 행사를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하에 유치하더라도 반쪽짜리 행사밖에는 할 수 없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의료기기 업체들이 자율규약을 정해 리조트, 바닷가 인근 컨벤션센터에서 하는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세 도시는 국내 어느 곳보다도 유명한 국제적 리조트고 바닷가 관광 도시다. 그곳의 행사에는 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제약·의료기기 업체의 본사가 첨단 시설을 설치한 홍보 부스에서 제품 설명 및 상담회를 열고 학술 행사도 진행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비슷한 컨벤션센터에서 행사를 하면 국제 행사라도 한국 관련 기업의 전시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내 제약 관련 리베이트 관행과 국제 학술회의를 빙자한 편법적인 학술 행사 그리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가 낳은 엉뚱한 결과물이다.

내년 제주 컨벤션센터에서 여는 국제학술 행사를 한국관광공사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유치한 필자로서는 막막할 따름이다. 각국에서 온 의사, 연구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궁색해서다. 그들은 국제 행사 전시장에 어째서 전 세계의 유명 약품, 의료기기가 전시돼 있지 않고, 자신들 나라에 진출한 것도 아니고 영문 설명과 자료 또한 부족한 한국 기업 제품만 전시돼 있는 이유를 물을 것이다. 전시장에도 비교할 글로벌 경쟁사가 옆에 있어야 관심이 커지고 국내 업체의 홍보 효과도 있을 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규제당국과 자율규정을 마련한 글로벌 제약기업 한국지사들은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모르지만, 국제적인 상식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기가 난감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