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달과 6펜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제목부터 끌린다. 그러나 소설 속에 달이나 6펜스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해설을 읽고 나서야 ‘달’이 아름다운 이상, ‘6펜스’가 세속적인 현실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가 전작(前作) <인간의 굴레>에 관한 논평 중 ‘이 작품 주인공은 달을 동경하기에 바빠 발밑에 떨어진 6펜스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비유를 읽고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5펜스나 10펜스가 아니라 6펜스일까. 이 작품이 출간된 1919년에 영국은 10진법이 아니라 12진법을 썼다. 당시 1실링은 12펜스였다. 6펜스는 가장 낮은 단위의 화폐였다. 소설 주인공의 모델인 화가 고갱이 그토록 갈망한 예술의 극점이 ‘달’이라면, 그의 척박한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은화가 곧 ‘6펜스’다.

이 두 개의 상징은 예술과 일상,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 내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신의 꿈을 좇아 모든 것을 버리는 예술지상주의자와 ‘눈물 젖은 빵’ 앞에 세상과 타협하는 현실주의자의 중간 어디쯤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삶을 이분법으로 양분하기 어렵다. 하늘의 달을 보기 위해서는 땅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꿈’만큼 ‘돈’의 가치도 중요하다. 서머싯 몸 역시 “돈이란 육감과 같아서 그것 없이는 오감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가위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고향으로 향하는 우리 마음에는 ‘달’과 ‘6펜스’가 함께 들어 있다. 같은 달이라도 추석 만월(滿月)은 더 크고 밝아 보인다. 달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풍경이 달라진다.

중국 명나라 시인 왕양명(王陽明)은 시 ‘산에서 보는 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산이 가깝고 달이 먼지라 달이 작게 느껴져/ 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 만일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 텐데.’ 단순한 원근법을 넘어 우주의 근본을 꿰뚫은 혜안이 놀랍다.

올해 출간 100주년을 맞은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으며 한가위 보름달을 기다린다. 달과 6펜스 은화는 환하고 둥글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의 높낮이를 아우르면서 부드럽고 긍정적인 추석을 준비해 본다. 시끄러운 세속 도시의 날 선 소음도 달처럼 둥글어지길 빌면서….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