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로제타 교훈' 외면하는 정부
오는 23일 일부 극장에서 벨기에 영화 ‘로제타’가 20년 만에 개봉한다. 이 영화는 식품 공장에서 수습생으로 일하다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해고된 18세 소녀 로제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일상의 평온이 무너진 로제타는 새 직장을 찾기 위한 혹독한 여정을 걷는다. 1999년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로제타는 벨기에 사회에도 적잖은 반향을 불러왔다.

벨기에 정부는 영화를 계기 삼아 개봉 이듬해인 2000년 청년고용정책 ‘로제타 플랜’을 시행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은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채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1999년 22.6%였던 벨기에 청년실업률은 로제타 플랜 시행 시점인 2000년 15.3%까지 내려가며 효과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이 재차 급등하며 20% 안팎까지 치솟았다.

우리도 로제타 플랜을 본떠 2014~2016년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을 추진했다. 공공기관에서 고용 인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채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기간 청년실업률은 9.0%에서 9.8%로 상승했다. 단기 대책이나 정부 재정 투입만으로 청년 일자리 대책을 풀기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벨기에 정부는 로제타 플랜의 부작용이 커지자 4년 만에 이를 폐기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청년내일채움공제 등 2~3년짜리 단기 일자리 대책을 더욱 밀어붙이고 있다. 그 와중에 청년 일자리 환경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달 대졸 실업자 수는 60만3000명으로 통계가 작성된 1999년 6월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달 청년 체감실업률(25.2%)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지난 19일 “청년세대 취업자 수와 고용률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15일 “고용지표 가운데 가장 개선되는 것이 청년지표”라고 평가했다.

벨기에 정부가 그랬듯이 잘못된 정책은 인정하고 바꾸면 된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해석마저 잘못되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다. ‘한국판 로제타’의 일자리 여정은 더 혹독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