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 논설위원
[천자 칼럼] "총요소생산성이 문제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세계 해상무역을 장악했다. 척박한 자연환경이 원동력이었다. 네덜란드 국토는 대부분 바다보다 낮은 저지대여서 농사를 짓기 어려웠다. 주민들은 청어잡이에 매달렸다. 수산업 호황으로 배가 많이 필요해졌고, 조선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한때 세계 선박의 절반 이상을 보유할 정도였다. 조선업은 해상무역의 토대가 됐고, 무역업과 금융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와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것도 이때다.

베네치아는 15세기 해상강국으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늪지대 위에 세워진 도시국가 베네치아의 자원은 소금뿐이었고, 경작할 땅도 없었다. 무역선을 건조해 지중해 무역을 독점했다. 해상법과 계약법을 정비하고 환어음, 장기국채 등 근대 금융제도의 토대를 닦았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가 상인에게 계약서에 근거해 권리를 주장하는 장면은 법치가 확립된 베네치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와 베네치아가 번영을 누린 것은 광대한 영토와 풍부한 노동력 덕분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 법·제도, 혁신 등 ‘무형자산’의 경쟁력 덕분에 인력과 자본이 몰렸다. 총요소생산성이 높았던 것이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자본을 제외하고 기술, 경영혁신, 노사관계, 법·제도 등이 얼마나 생산에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은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도 못 미쳤던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중요했다. 하지만 노동과 자본의 성장률 기여도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규제와 기술 등의 획기적인 혁신 없이는 앞으로 10년간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전히 한국의 금융·노동·기업활동 규제 환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하위권이다. 타르한 페이지오글루 국제통화기금(IMF) 한국미션단장은 “최저임금이 2년간 30%가량 오르면 어떤 경제라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정부는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금융·노동·산업 구조 개혁과 규제 개선은 도외시한 채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한 ‘땜질 처방’만 하고 있다. 성장과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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