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구간설정委 독립성 취약…최저임금 갈등 증폭될 수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잦아들 기미가 없다. 오히려 확산일로다. 고율 인상, 산입범위 확대(상여금·복리후생비), 계산 방식(주휴시간 포함)에 이어 결정구조 개편이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는 결정 과정에서 노사 대립을 완화하고 객관성과 합리성을 높이겠다며 기존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한다는 방침이다. 노동계 반발에다 국회 법안 처리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법안과 맞물려 있어서다. 기업들은 내년 최저임금 결정이 늦어지는 데다 고액 인상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 이후 평균 인상률 8.6%만 적용해도 당장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9068원이다. 최저임금은 매년 6월29일까지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의결하도록 법률에 정해져 있다. 위원은 27명으로 노동계, 경영계, 정부가 9명씩 추천한다. 이른바 3자 위원회 방식이다. 그렇지만 노측과 사측을 대표하는 위원들이 각자 요구안을 내놓고 심의를 진행하다 보면 사실상 노사교섭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사 간 극심한 이해 대립이 매년 반복되는 이유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도 정작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이 정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섭 결렬로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들이 주도해 결정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최저임금 결정 이후에도 노사 간 갈등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의 골자는 구간설정위원회 신설이다. 전문가 9인으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을 정하고 이 범위 안에서 지금처럼 노사와 공익대표가 참여한 결정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심의·의결한다는 것이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결정을 이끌어내 궁극적으로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노동계는 반발, 경영계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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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는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구간설정위원회에서 상한선을 씌워 인상 속도를 늦추려는 의도라고 본다. 양대 노총은 지난 9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정부가 2월 임시국회에 법안을 상정할 경우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했다.

경영계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일단 환영 의견을 내놓으면서도 포괄적인 제도 개선을 동시에 주문하고 있다.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은 우려가 더 크다. 업종·규모별 구분 적용이나 주휴수당 폐지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먼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 전문가 사이에서는 정부가 노동계의 반발을 잠재우고 결정구조 개편을 얻어내기 위해 노동계에 무언가 양보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정부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정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나선 배경에는 1988년 도입한 낡은 제도가 갈등을 부추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정부안이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며 “문제점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 논란의 출발은 심의·의결구조가 가진 문제점이 아니라 2017년 대통령 선거 이후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당시 주요 정당 대통령 후보는 모두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유승민 후보는 2020년까지, 홍준표·안철수 후보는 2022년까지로 공약 달성 시기만 다를 뿐이었다.

2017년 5월 현 정부 출범 직후인 7월, 예상대로 최저임금 16.4% 인상이 결정됐다. 당시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은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제10대 위원(위원장 어수봉) 그대로였다. 이들은 정부가 바뀌자마자 직전 2년간 7~8% 선이던 인상률을 한 번에 두 배 이상으로 올렸다. 정부가 바뀌자 같은 위원들의 동일한 전문성에도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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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제점 내재한 개편안

정부는 7일 개편안 발표 이후 10일, 16일, 24일 잇달아 토론회를 여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법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안 심의를 3월 말에는 시작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결정구조를 개편하려면 2월 임시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 시간은 촉박한데 주요 내용에 대해서는 다수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정부 개편안은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위원 위촉 방식과 심의·의결 절차 등 위원회 운영 방식은 그대로 두고 구간설정위원회만 하나 더 신설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단계가 하나 더 늘어나니 지금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 법정 심의기간(90일)이 더 길어질 공산이 크다.

전문가 9인으로 구성하는 구간설정위원회의 위원 위촉 대상도 문제다. 5~10년 이상 대학·연구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이나 경제학, 노사관계, 노동법 등 전문 분야를 미리 정하고 있지만 독립성이 취약하다. 현행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도 전문가를 위촉하지만, 노사단체의 이해관계나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물가나 경제성장률 등 경제지표를 토대로 객관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한국은행이나 기획재정부 등을 참여시키는 대안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위원 위촉 방식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구간설정위원회의 전문가 위원을 위촉할 때 노·사·정이 먼저 추천해 위원 풀을 구성한 다음 노사단체가 부적합자를 순차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을 취한다. 노동위원회 방식이다. 노동 관련 사건을 심판하는 기능을 주로 담당하는 노동위원회는 준사법기관으로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엄격히 요구받는다. 노사단체의 순차 배제는 편향성 시비를 차단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위촉 과정에서부터 노사단체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문가들의 소신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객관적, 합리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구간설정위원회의 성격과 어긋난다.

노사단체의 이해 대립이 지속된다면 위원회 구조를 어떻게 바꾸든 정부가 추천한 위원이 사실상 더 큰 결정권을 행사하게 된다. 정부가 노사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노사 간 갈등이 지속될 우려도 크다. 만약 구간설정위원회가 상·하한 구간을 충분히 좁혀주지 못하면 결정위원회는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가 겪는 과정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의결 방식도 문제다. 구간설정위원회나 결정위원회는 지금처럼 재적위원 과반 출석에 출석위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한다. 노사단체가 추천한 위원이나 노사단체에 속한 위원들은 상반된 방향으로 표결하기 때문에 결국 정부 쪽 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 결정을 내리더라도 승복하기 힘든 구조여서 갈등이 증폭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노사 요구안 격차 커 혼란 우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을 위한 법 개정이 2월 임시국회를 넘기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결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매년 8월5일이면 다음해 최저임금액을 고시해야 한다. 시행까지 겨우 5개월 정도 여유가 주어지는 셈이다. 정부는 입법 지연 때는 2020년 최저임금 고시 시점을 8월5일 이후로 미룰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들로서는 최저임금 폭탄을 새해가 임박해서야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진다.

노사 요구안 격차도 커질 전망이다. 경영난을 걱정하는 영세·중소기업의 목소리가 높다. 인상 속도 조절은 물론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마당에 주휴수당은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다. 노동계는 산입범위 확대 등으로 인상 효과가 반감됐으니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자면 내년 최저임금이 ‘1만원+α’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장 혼란은 계속 가중될 전망이다.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