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규제개혁은 십자가 지는 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규제 개혁을 십자가를 지는 것에 비유해 화제다. 박 회장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카풀 서비스 등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 “아무도 십자가를 지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규제 관련) 법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혁파에 나서야 할 정부도, 규제 혁신 관련법을 처리해야 할 국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비판이다.

‘규제와의 싸움’이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다. 행정 규제에는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불필요하게 경제활동과 창의성 발휘를 막는 경우가 많다. 규제로 이익을 보는 집단도 생긴다. 규제 개혁은 이런 집단의 ‘이익 생태계’를 깨는 것이기 때문에 강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가 한결같이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규제 전봇대 뽑기(이명박 정부)’와 ‘손톱 밑 가시 제거(박근혜 정부)’ 작전까지 벌였으나 ‘용두사미’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차례 과감한 규제 개혁을 주문했다. 그럼에도 직역(職域)집단과 시민단체 등의 필사적인 반발에 발목 잡혀 ‘갈라파고스 규제 공화국’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유야 어쨌건 규제 혁파에 대한 저항을 뛰어넘지 못하면 기업 투자를 일으켜 경제성장 엔진이 왕성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 점에서 기득권 반발을 무릅쓰고 규제 개혁을 실천하는 주요국 지도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의료계의 반대를 뚫고 규제를 풀어 원격진료, 재택의료 활성화에 나섰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특정 지역에서는 자유롭게 새로운 사업을 허용하는 ‘규제프리존법’도 도입했다. 덕분에 해외에 나갔던 공장들이 돌아오고, 일자리가 넘치고 있다. 치명적인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지층인 보수층의 강력한 반대에도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서슴지 않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지지층 반대를 거스르며 ‘하르츠 개혁’으로 불리는 노동개혁을 단행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그 바람에 다음번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정권을 내줬지만, 슈뢰더 전 총리 덕분에 ‘유럽의 병자(病者)’로까지 불리던 독일 경제가 기사회생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014년 집권하자마자 ‘인도에서 만들자(Make in India)’는 구호를 내걸고 노동계 반대에도 외국인 지분 제한 철폐와 노동 개혁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글로벌 기업의 최대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조의 파업 공세를 뚫고 종신고용 등 철도 개혁을 단행했다.

모두 기득권 집단의 지지에 신경 썼다면 이런 개혁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깊이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