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시행 앞두고 혼란 가중되는 이유

[뉴스의 맥] 주 52시간제, 후속 대책 없는 '속도전'은 안 된다
주당 근로시간 한도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16시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이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지나치게 오래 일하는 우리 사회의 관행을 바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 life balance)’을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급속한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기업의 인력난이 심해지고 근로자의 소득도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지난 11일 부랴부랴 ‘노동시간 단축 가이드’를 내놨지만 산업 현장의 혼란은 더 커졌다. 구체적인 지침 없이 대부분 법원 판례를 소개하는 데 그친 데다 노사 합의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도만 담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지난 20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열어 ‘일단 시행, 위반 사업주 처벌 6개월 유예’라는 방침을 내놨다. 이틀 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건의한 내용을 고려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노동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당·정·청 방침에 대해 “정부·여당이 대기업의 목소리만 듣는다”고 날을 세웠다.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혼란은 진즉부터 예견됐다. 국회가 지난 2월 말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면서 시행 시기를 불과 4개월 뒤인 7월1일로 못 박은 탓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7월 시행된 주5일 근무제(주 40시간제)의 경우 법안 통과(2003년 8월)부터 시행(2004년 7월)까지 1년가량 준비 기간이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당시에도 가이드라인 격인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지침’을 내놨다. 법 시행을 7개월이나 남겨둔 2013년 12월이었다. 노사가 정부 지침을 토대로 협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었다.
[뉴스의 맥] 주 52시간제, 후속 대책 없는 '속도전'은 안 된다
주5일제보다 시행 속도 2배 빨라

주5일 근무제는 사업장 적용도 현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했다. 기업 규모별로 6개로 나눠 7년간에 걸쳐 단계별로 적용토록 했다. △1000인 이상(공기업, 금융·보험 포함) △300인 이상 △100인 이상 △50인 이상 △20인 이상 △20인 미만으로 나눠 규모가 작은 기업은 적용 시점을 늦췄다. 법의 전면 시행은 7년이 지나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야 이뤄졌다.

이에 비해 주 52시간제는 기업을 3개 군(300인 이상, 50~299인, 5~49인)으로 나눠 2021년까지 3년에 걸쳐 전면 시행한다. 주 52시간제는 연장근로를 포함해서 1주일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16시간 줄이다 보니 산업 현장의 체감 정도는 주5일 근무제보다 크다. 그런데도 전면 시행까지의 기간은 주 5일제(7년)의 절반도 안 된다.

입법 논의 과정도 차이가 확연하다. 토요휴무제나 주 40시간제로도 불리는 주5일 근무제는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공약 이행으로 2003년 8월 국회 통과까지 5년 이상 걸렸다. 노사정위원회에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2년여 동안 100여 차례가 넘는 논의를 거쳤다. 노·사·정 간의 이견으로 완전 합의는 못했지만 2000년 10월에는 주 4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는 기본 원칙에 합의하기도 했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노사 양측이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했다. 정부도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양측 입장을 충분히 고려했다. 그 결과 기업 부담을 감안하면서 휴일·휴가제도를 국제 기준에 따라 정비하는 내용이 개정안에 담겼다.

복잡한 임금체계도 대응 어렵게 해

대표적인 사례는 유연근무제의 하나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한 것을 들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를 운용할 수 있는 기간이 지금처럼 3개월로 늘어난 것이 바로 이때다. 3개월을 단위로 이 기간 주당 평균 40시간만 일하면 특정 주에 40시간을 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일손이 많이 필요한 특정 시기에 인력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연장근로도 주당 12시간에서 16시간으로 확대하는 특례를 도입했다. 연장근로는 통상 가산수당 50%를 얹어줘야 하지만 이때 늘어나는 4시간에 대해서는 25%만 적용토록 했다. 특례는 3년 동안만 허용됐다. 그밖에 월차휴가를 폐지하되 연차휴가를 12일 이상에서 15일 이상으로 확대하고, 생리휴가는 무급화하되 근로자의 청구권을 보장하는 등 노사 간 이해관계도 절충했다. 전문가들은 주5일 근무제 정착과 관련해 “노사 이해관계를 두루 배려하고, 정착까지 충분한 기간을 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추진됐지만 국회가 본격적으로 입법 동력을 얻은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다.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근로시간 단축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노동 공약으로 제시됐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로 액수로는 사상 최대로 올랐다. 지난 2월 말에는 ‘주52시간 근무제법’이 통과됐다. 정부·여당 주도로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사 간 이해 균형은 ‘주5일 근무제’ 때보다 크게 부족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 부담을 고려한 내용은 △휴일근로 할증률 명시 △특별연장근로 한시 허용 등 크게 두 가지다. 반면 △근로시간 단축 △특례업종 축소 △관공서 공휴일 민간 적용 △연소근로자 노동시간 단축 등은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다. 근로시간과 임금 등은 노사 합의로 정해지는 만큼 절충이 중요한데도 기업이 더 많이 양보한 셈이다.

주5일 근무제 시행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기업과 국민경제의 규모가 훨씬 크고, 인사노무관리 제도도 훨씬 복잡하다. 2016년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은 임금체계를 바꿨고,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로 기업의 대응을 더욱 어렵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제’의 급속한 도입은 근로자의 기대를 키우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노사 간 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는 사업장은 거의 없다”는 기업 관계자들의 하소연이 나오는 배경이다.

면밀한 정책집행 과정관리 필요

지금이라도 정부는 포괄임금 대책, 유연근무제 도입, 근무시간 및 임금 조정 등에 관한 구체적 지침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사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정부·여당이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 처벌 유예기간을 두기로 하는 등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데 대해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여론은 바람직하다는 쪽이다. 속도 조절과 더불어 유연한 정책 집행과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정부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