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에 맞게 규제환경 바꿔
신속한 성능시험과 제품화 지원
'의료규제 전문가'도 육성할 것

류영진 < 식품의약품안전처장 >
[정책의 맥]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틀 벗는 의료기기 규제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힘센 거인이 나온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을 집에 초대한다면서 데려와 쇠로 만든 침대에 눕혀 붙잡아 놓은 뒤 키가 침대보다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잘라내고 작으면 사지를 늘여 죽였다. 결국 거인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이 이야기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정해진 틀이나 기준에만 맞춰 ‘허용과 금지’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규제당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활용한 제품들이 개발되면서 사회·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기술 발전과 함께 더욱 건강한 생활을 위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의료기기는 4차 산업혁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AI, 로봇 기술, 3차원(3D) 프린팅 등이 대표적이다.

AI, 로봇 기술이 적용된 첨단 의료기기는 천문학적인 초기 개발 비용, 고도의 전문성, 혁신적인 기술 발전 속도 등이 반영돼 제품 개발부터 허가까지 맞춤형 정책이 필수적이다. 선진국들은 첨단 의료기기 특성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규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용 소프트웨어 등의 의료기기는 개별 제품이 아니라 개발 업체를 사전 인증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개선해 시범사업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런 변화에 맞춰 변신 중이다. 의료기기 기술에 대한 규제 방식을 허용과 금지라는 이분법적인 패러다임이 아니라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한 범위 내에서 제품 특성에 맞는 개발과 허가가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적 기반을 조성 중이다.

우선 첨단 의료기기 맞춤형 규제 환경 마련을 위해 ‘첨단 의료기기 특별법’과 ‘체외진단 의료기기법’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 의료기기 특별법’이 제정되면 신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는 임상시험, 품질관리(GMP) 등을 맞춤으로 심사해 신속한 제품화가 가능해지고, 연구개발 단계부터 수시로 심사해 제품 개발이 완료되는 시점에 허가가 이뤄진다. 인체에 직접 접촉하지 않는 체외진단 의료기기 특성을 반영한 ‘체외진단의료기기법’은 임상적 성능시험을 기존 임상시험기관뿐 아니라 혈액원, 검사수탁기관 등에서도 할 수 있고, 허가 방식도 시약·장비·소프트웨어에 대한 각각의 개별 허가나 하나의 세트(시스템)로도 가능해진다.

또 의료기기산업 발전과 신속한 제품화를 지원하기 위해 임상시험, GMP, 허가 등 관련 규정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춘 ‘의료기기 규제과학 전문가(RA)’를 양성할 계획이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RA 청년 패키지 과정’을 운영하고, 부산·대구·광주·원주 등 지역별로 ‘특화교육 과정’ 등을 개설할 예정이다.

식약처는 매년 5월29일로 지정된 ‘의료기기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제11회 의료기기의 날’ 행사를 29일 연다. ‘퓨처 드림, K디지털 헬스’를 주제로 산업계·학계·소비자단체·정부가 한자리에 모여 우리나라 의료기기 현주소를 공유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식약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의료기기 정책을 펼쳐 국민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하고 첨단 의료기기 개발 가속화로 의료기기산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혁신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의료기기가 우리나라 산업에 중추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미래의 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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