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방북 초청 제의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여건을 만들어서’라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남북 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여온 데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대화 국면의 물꼬가 트였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방북 요청에 대해) 수락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문 대통령은 김대중(2000년 6월)·노무현(2007년 10월) 전 대통령에 이어 북한을 찾는 세 번째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 문 대통령에 대한 방북 초청은 성사 여부를 떠나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펼쳐질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북핵(北核)폐기’의 새로운 모멘텀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북핵 봉쇄를 위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균열을 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냉정히 짚어봐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비핵화와 별개로 갈 수는 없다”고 선을 그은 미국 백악관 논평에 담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북한은 영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핵무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과 분위기가 같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다”는 청와대 논평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 유지의 근간인 한·미·일 동맹이 더 공고해져야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의미 있는 전개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놀아나 한·미·일 관계를 균열시키는 자충수가 될 위험이 크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각종 미사일 제거 의지와 일정을 분명하게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북의 평화의지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정상회담은 핵전력 고도화를 위한 시간벌기와 대북 제재 무력화에 이용될 뿐이다. 대한민국 지도자가 ‘핵무력 강성대국’인 북의 위세에 머리를 조아렸다는 따위의 선전선동 소재로 이용될 수도 있다. 대화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여론을 온전히 수렴해야 한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정상회담 장소가 왜 꼭 평양이어야 하는지도 짚어볼 문제다. 북한이 회담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서울 개최 방안을 북측에 제의해볼 만하다.

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회담을 위한 회담’은 목표일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핵 폐기가 담보되지 않은 남북 정상회담 내지 남북관계 개선은 아무 의미가 없다.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정부 모두 이 점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