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어처구니와 청맹과니
‘약이 뒤바뀌는 어처구니없는 간호사의 실수로 상처가 도리어 덧나고 말았다.’(김승옥 소설 ‘서울의 달빛’) 여기서 ‘어처구니없다’는 말은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어처구니’란 무엇인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맷돌의 한 부분’이라는 설이 있다. 맷돌의 나무 손잡이라거나 아래위 맷돌을 맞물리게 하는 부분이라는 얘기가 혼재돼 있다. 궁궐의 기와 지붕에 세우는 잡상(흙인형)이라는 설도 있다.

문헌적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정확한 어원도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꼭 있어야 하고, 없으면 물건이 제 기능을 못 하거나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쓰임새가 같다. 국어사전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이라고만 기술돼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원래 뜻은 잊히고 관용적인 의미만 남은 것들이 많다. ‘시치미를 뗀다’의 시치미는 매사냥꾼들이 자기 매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꽁지에 달아 둔 꼬리표를 말한다. 이것을 떼어버리면 누구 소유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을 안 한 것처럼 딱 잡아떼는 행동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됐다.

‘트집을 잡는다’의 트집은 옻나무에서 옻을 채취하려고 나무 껍질에 내는 생채기를 가리킨다. 살아 있는 나무에 트집을 잡으므로 생트집이라고 했다. ‘뚱딴지’는 전기가 통하지 않게 하는 절연체 애자(碍子)를 뜻한다. 전기가 통하지 않듯 말이 통하지 않는 멍청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이런 관용어구들의 복합판과 같다. 자고나면 벌어지는 후진국형 참사부터 그렇다. 어처구니없는 화재로 밀양의 한 병원에서 39명이 목숨을 잃고 150여 명이 부상했다. 29명이 희생된 제천 참사 한 달여 만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수많은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최소한의 소화시설인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는 점이다. 병원은 방화문 관리 등을 직원의 ‘셀프 점검’으로 끝내고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시치미를 뗐다.

정부는 참사 때마다 재발방지 대책을 공언했지만 대부분 그때뿐이다. 정치권은 재난을 정쟁화하기 일쑤다. 한쪽에서는 상대방을 헐뜯기 위해 트집을 잡고, 다른 한쪽에서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뚱딴지 타령을 늘어놓곤 한다.

국민의 안전 불감증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우리 모두의 눈을 가려 청맹과니 사회로 만든다. 청맹(靑盲)은 겉보기에 멀쩡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눈을 뻔히 뜨고도 사리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니 당달봉사가 따로 없다. 이러고서야 사회 안전 시스템의 근본적인 수술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