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튜어드십 코드, '관치의 중독' 우려된다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즉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기관투자가의 행동지침(자율규범)이다. 2010년 영국이 처음 도입했는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주주, 특히 기관투자가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영국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2010년 55.6%) 이들의 영향력을 활용하면 주인 없는 경영에 따른 단기실적주의 폐해를 시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 비중이 17% 정도인 한국(2013년)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유는 이와 다르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으로 오너 일가 사익추구 등을 통한 소액주주의 재산권 침해를 방지’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12개국이 이를 시행하고 있다.

코드는 연성규범(soft law)이므로 본래 강제성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를 무시하면 배겨내기 어렵다. 산업은행이 사모펀드(PEF) 출자사업 위탁운용사 선정 시 출자사업 평가부문에서 코드 도입기관에 가점을 주기로 했고, 그 때문에 사모펀드들의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것이 그 예다.

국민연금도 조만간 시행한다. 국민연금이 연금기금 운용사 선정에 가점을 부여하면 0.1점이 아쉬운 위탁운용사들로서는 무조건 가입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반(半)강제적으로 진행된다.

이 코드는 한국의 300여 기관투자가에 새로운 의무인 ‘스튜어드십 책임’을 부과한다. 의무이행비용은 당연히 투자자가 부담하는데 제대로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기관투자가가 코드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안건 내용을 파악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기업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비(非)대면 방식으로 기업의 재무적 경영성과만 분석하면 충분했으나 이제는 전략, 지배구조, 기업문화 전반을 추가로 파악해야 한다. 대화 과정에서 주요 투자정보를 획득할 수도 있고 이를 거래에 활용하면 내부거래의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코드 원칙을 준수하지 못하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기업을 잘못 평가해 기업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면 법적·도덕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할 일은 늘어나고 책임은 강화된다. 번거롭고 귀찮다. 투자자의 관심사는 최고의 수익률에 있으므로 이것을 제대로 안 한다고 다그칠 이유는 없다.

간편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기관투자가 서비스회사(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 Company)를 이용하면 된다. 인력을 고용해서 자체보고서를 작성하고 관리하느니 보고서를 사면 간단하다. 그러나 이 보고서 내용을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고, 비용을 들여 투자자들이 얻는 직접적인 이익은 별로 없다. 결국 서비스회사만 돈을 번다.

반면에 이 보고서가 기업의 평판과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기업에는 공정거래위원회보다 이 보고서가 더 무섭게 된다. 엉터리 보고서로 피해를 본 기업이 있다면 소송도 불사할 것이고, 서비스회사는 이를 대비해 거액의 보험에 들어야만 할 것이다.

지배구조가 투명해지고 주가가 오르며 자본시장 건전성이 개선된다는 주장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일본이 2014년 코드를 도입해 214개 기관투자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나 실제 코드 준수율은 10%에 미치지 못하며, 영국에서도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코린트 사람들이 전쟁을 앞두고 쓸데없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는 통을 굴리며 왔다 갔다 했다. 지나던 사람이 “왜 통을 굴리고 다니는 거요?”라고 묻자, “나도 남들처럼 무엇인가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소?”라고 대답했다.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상징성은 있겠지만, 코드 시행을 강하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선한 의도는 자발적으로 발현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 관치(官治)에 이어 기업 관치에 이르는 ‘관치의 중독(中毒)’에 빠진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jsskku@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