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저널] 보수·진보 가면 벗고 좌·우로만 경쟁하라
대통령선거가 이제 2주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층이 20%가 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늘고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30%대 지지층은 오래전부터 마음이 확실히 정해져 있는 반면, 안철수·홍준표·유승민 세 후보로 대표되는 이른바 비문(非文) 지지층이 전체 부동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문 단일화 가능성이 희박해짐에 따라 비문 지지자들의 사표(死票)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부동표도 그만큼 더 늘고 있다는 부연설명이다.

우리는 과거 20년간 김대중·노무현 좌파정부 10년, 이명박·박근혜 우파정부 10년을 경험했다. 큰 변화가 없는 한 친문(親文)에 의한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이 같은 10년 주기 ‘좌우 순환 정권교체 시계추운동’이 정형화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이 같은 정치지형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동안 국민을 호도해 오던 각 정당의 정치언어, 또는 정치간판을 투명하게 제대로 바꿔 달려는 진솔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진보·보수라는 모호한 정치언어가 있다. 우리나라엔 ‘보수=우파, 진보=좌파’라는 어설픈 등식이 통용되고 있지만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만 해도 이 같은 등식은 바로 무너져 내린다. 그는 대표적 우파 인사다. 따라서 등식에 따라 보수로 분류돼야 하지만 스스로를 진보로 분류한다. 다시 말해 ‘보수 우파’가 아니라 ‘진보적 우파’ 인사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미국에는 좌파가 없다. 우파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좌우로 가르는 유럽과 달리 보수·진보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분법적 틀 속에서 필요하면 ‘극(極)’ 또는 ‘중도’ 등 수식어를 덧붙여 더 세분화된 간판을 일직선상에 늘어놓으면 그만이다. 대선이 진행 중인 프랑스 등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좌·우에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을 덧씌워 선형 스펙트럼이 아닌, ‘2×2=4’의 해괴한 평면적 조합을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확실해지는 역사적 토대도 갖고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북부는 산업화가 급진전됐다. 북부의 노동력 확보는 절실한 과제였지만 흑인노예들을 틀어쥐고 있는 것은 남부 농장주들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운동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남부 흑인노예를 북부산업현장에 투입하려는 전쟁이었다고 설명하는 사람이 많다. 흑인노예를 ‘서둘러’ 확보하기 위한 ‘진보(進步)적’ 북부와 이를 거부하고 노예제를 ‘지키고 수호하려는’ ‘보수(保守)적’ 남부가 전쟁까지 벌였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좌가 진보라는 가면을 쓴 것은 친북, 종북, 또는 빨갱이로 매도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이며, 우가 보수라는 가면을 쓴 것은 재벌을 옹호하는 자본가 앞잡이로 매도될 것을 의식한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좌우 구분은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에 유럽과는 외형상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하지만 그 본질이 유럽의 좌우 구분과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의 좌우 구분은 안보가 예외적일 뿐, 조세, 사회복지, 성장·분배, 노사 등 사회 경제적 이슈에 대한 이념 또는 접근법에 따라 갈라질 뿐이다.

이제 우리 정당들도 스스로의 정책과 이념을 공개적으로 차별화하고 떳떳이 밝히고 또 이를 그 간판에도 제대로 반영해야 하며, 유권자들 또한 이를 근거로 솔직하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세상은 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의 귀를 막고 종을 훔치는 엄이도령(掩耳盜鈴)에 속지 않는다. 이제 보수·진보라는 국적 없는 가면과 간판을 벗어던지고 좌우 선형분류에 따른 쉬운 간판으로 바꿔 솔직하게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평가받아야 할 때다.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