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약에 대한 단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아스피린’, 국내 천연물 신약으로 2014년 한 해에만 2억3000여만개나 처방된 위염치료제 ‘스티렌’.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식물에서 성분을 추출한 약이라는 것이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잎 추출물을, 스티렌은 쑥을 원료로 사용했다. 약리학은 여러 종류의 식물을 질병 치료에 사용하면서 정립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의학도 다르지 않다. 질병 치료를 위해 식물의 꽃 잎 씨앗 줄기 뿌리 등의 효능과 부작용을 배우는 학문을 한의학에서는 본초학이라고 한다. 오랜 임상경험이 축적된 끝에 정립된 옛 선조들의 피와 땀이 맺힌 결실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본초학이야말로 한약의 우수성을 잘 설명해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한약재의 70%가 유통되는 서울 경동약재시장엔 불황으로 폐업하는 가게가 속출하고, 한약재를 재배하는 농가도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의 치료 건강보험 적용률이 낮고, 민영보험도 안 되는 상황에서 한약재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까지 커져서다. 한의사를 천직으로 삼고 환자의 병을 고치는 데 평생을 바친 필자로서는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더욱이 우리 한의계가 한약의 치료 효과를 속속들이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마당이어서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척추디스크 질환에 많이 쓰는 한약인 ‘청파전(GCSB-5)’은 항염증, 신경회복, 연골 보호 효과 등이 여러 편의 SCI급 학술지에 게재되면서 학계에서 주목받았다. 또한 국내 한 제약사가 천연물 신약으로 개발해 골관절염 치료제로 시판되고 있다. 알레르기 비염 치료약인 ‘형개연교탕’, 알츠하이머형 치매 치료약 ‘육미지황탕 가감방’의 효과도 국제학술지를 통해 입증됐다.

한약재 안전성 확보를 위해 민관 모두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2012년부터 모든 한약재를 hGMP(우수 한약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를 통해 심사, 평가해 관리하고 있다. 또한 한의의료기관은 GMP 시설을 갖춘 한약제조사에서 중금속 및 잔류농약 검사를 통과한 청정한약재만 의무적으로 쓰고 있어 약의 안전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홍보 미비로 국민 대부분은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실정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동의보감에도 학질(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개똥쑥으로 말라리아 특효약을 연구해 노벨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임상경험을 통한 우수한 노하우를 연구에 잘 활용한다면 노벨의학상 수상도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직능 갈등 개선과 제도 보완을 통해 국내 한의학에도 날개를 달아줄 때다.

신준식 < 자생한방병원 이사장 jsshin@jase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