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협상과 타협에 대한 단상
사회적 이슈, 국가적 이슈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반대여론이 발생, 분화, 확산되는 이유를 보면 늘 모든 가능성이 거론되고 결국 그 모든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찬반이 갈릴 때는 사회적 담론이 필요하고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의 자유로운 토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론과 찬성론이 부딪칠 때 그들은 서로의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 주장에 매몰돼 상대방의 견해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으며 끝장토론까지 가도 늘 결과는 협상 결렬이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에 가깝다. 가능하다 해도 과다한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게 뻔하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간을 끌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후회하는 것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법안이나 정책 결정과정, 국회의 입법심의 결의과정은 국민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인 만큼 충분한 논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협상과 타협의 과정과 그 결과물의 가치를 믿는 것이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회 곳곳에서 대립적인 의견과 입장의 차이를 볼 때마다 나는 법정스님, 프란치스코 교황,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같은 분들을 떠올리곤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음을 찢으라고 한다. 내 고집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남의 고집을 꺾기보다 내 고집을 꺾는 것이 쉬울 테니 갈등 해결의 방법이리라. 그렇다면 고집을 꺾는 것이 손해를 보는 일일까. 내 의뢰인 한 분이 경영하는 회사 노조가 경영권 일부 인수까지 주장하는 등 일견 무리해 보이는 요구를 고집했다. 그런데 고심 끝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노조의 요구를 시뮬레이션해보니 오히려 회사가 이익을 보는 게 아닌가. 노조가 불리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모르고 근시안적인 요구에 급급했던 것이다. 물론 이 협상은 성공했다. 양보하려는 마음으로 사안을 바라보면 서로 윈윈할 해결책이 보일 수 있다.

한국은 지금 내우외환의 풍랑을 만나 거국적으로 기민하게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가파른 고갯길을 숨가쁘게 오르고 있는데 우리는 국론분열의 한가운데에서 방향타를 잃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서로 고집스럽게 고정관념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숨을 돌리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하다. 먼저 내려놓고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

조영곤 < 화우 대표변호사 ykoncho@yoon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