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53 금성 대전투' 스틸컷
영화 '1953 금성 대전투' 스틸컷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승전을 다룬 중국 영화 '1953 금성 대전투'가 수입 허가를 받아 논란이 거세진 가운데, 결국 해당 영화의 국내 상영이 취소됐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8일 전체회의에서 "(수입사 측에서) 등급 분류를 포기해 상영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물등급위원회는 등급분류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분류를 한 것이고, 비디오물로 분류가 나왔는데 당사자가 부담스러웠는지 모르겠지만 철회를 했다"고 덧붙였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영화 수입사 위즈덤필름은 '1953 금성 대전투'의 등급 분류 취하 신청을 했다. 취하 신청을 별도의 절차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에 영화는 국내 배급이 불가해졌다.

이정연 위즈덤필름 대표는 이날 오후 사과문을 발표해 "당사에서 수입한 영화 '1953 금성 대전투'로 인해 국민분들께 크나큰 심려를 끼쳐드려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해당 영화의 해외 저작권자와 판권 계약을 파기했고,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도 국외비디오 등급심의가 취하됐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충분한 고민 없이 해당 영화를 수입한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한국 전쟁에서 목숨을 잃으신 순국용사를 포함해 모든 걸 다 바쳐 싸우신 참전용사분과 가족분들 그리고 이번 일로 크나큰 심려를 끼쳐드린 모든 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앞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심의를 거쳐 '1953 금성 대전투'에 극장 개봉용이 아닌 비디오용으로 심의를 마치고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부여했다.

중국에서 '금강천'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돼 지난해 10월 개봉했던 해당 영화는 한국전쟁 휴전을 앞두고 중공군이 막바지 총공세를 벌인 금성전투를 중국과 북한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영어 제목은 '희생(Sacrifice)'으로, 금성 전투를 앞두고 금강천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 중국군이 미국 정찰기와 폭격기의 공습에 맞닥뜨려 다리가 파괴되자 몸으로 다리를 쌓아 도강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희생'에 빗대어 표현한다.

한국은 이 전투에서 수적 우세를 앞세운 중공군에 밀려 패전하며 영토 193㎢를 북한에 넘겨줬다. 국군 피해는 전사자 1701명, 부상자 7548명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됐다. 이 외에 4136명이 포로가 되거나 실종됐다.

중국의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영화에 대해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抗美援朝) 70주년을 기념하며, 적과 아군의 전력 차가 현격한 상황에서 분투한 의용군 전사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항미원조'라고 부른다.

영화에서는 미군과 중공군만 등장한다지만, 한국군의 패전을 다루면서 항미원조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영화의 국내 수입이 타당한지를 둘러싸고 거센 비판 여론이 일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은 작은 나라,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라고 하던 문 대통령의 굴욕적인 발언은 아직도 국민들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한다"며 "이것도 모자라 대한민국을 침략한 중공 찬양 영화를 우리 안방에서 보라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같은 당 소속 최재형 전 감사원장 역시 "철저히 중국과 북한의 시각으로 제작한 영화"라며 "청소년들에게 침략 전쟁에 가담한 중국 인민군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를 15세 이상 관람가로 보여주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재향군인회도 분노했다. 향군은 "호국영령은 물론 6·25전쟁에 참전했던 국군과 유엔군을 능멸하는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 영화를 제작한 의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항미원조 7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했듯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으로 본질을 왜곡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청소년들에게 침략전쟁에 가담한 중공군을 영웅으로 묘사한 정치 선전물을 보여주는 것은 자유민주 체제의 가치를 뒤흔드는 반국가적 행위"라며 상영 허가를 취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