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반(半)샷법과 정치권의 착각
“‘원샷’을 외치며 마시려던 잔에 술이 반밖에 차 있지 않더라. 흥이 나지 않는 술자리다.” 얼마 전 국회 문턱을 어렵사리 넘은 소위 ‘원샷법’, 즉 기업활력제고특별법에 관한 이야기다.

이 법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우리의 주력 산업 목록은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마땅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해당 산업에서 중국 등의 추격은 거세고 우리 기업들의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과거 일본 기업들의 사례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과 비슷했다.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던 가전 반도체 회사인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등이 한국 기업들에 맹추격당하면서 수익성은 떨어지고 신제품 공략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쇠락을 거듭했다. 일본 정부는 ‘산업재생과 활력을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전기전자업체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던 히타치가 철도 등 인프라 회사로 거듭나는가 하면 많은 일본 기업이 변신에 성공했다. 일본의 제도를 벤치마킹하자는 시도가 지금의 원샷법이다. 하지만 국내에 수입된 법은 슬프게도 야당의 ‘재벌 특혜’란 반대로 인해 반쪽짜리 법이 되고 그나마도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의 통과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아쉬움이 많다.

제1 야당의 집요한 반대에 대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제한 조건이나 지원 제외 등의 단서가 붙었으며 최초의 취지는 무색해져 버렸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부채비율이 200%가 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사는 이 법의 채무보증지원도 받을 수 없다. 이밖에도 다양한 단서들이 달리는데 이처럼 중요한 지원대상에 대기업은 제외다. 변화가 필요한 우리 주력 업종은 대부분 이런 대기업집단이 이끌어가고 있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원샷법인지 의문이다. 당초 취지와는 다른 ‘누더기법’이 돼버린 건 아닐까.

안타까운 점은 실망스런 누더기법의 비애가 원샷법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이 취지를 공감하는 멀쩡한 법이 국회만 가면 누더기가 돼 나온다. 노동규제 입법도 마찬가지다. 노동개혁은 필요하지만 대기업은 안 된다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개혁 범위가 갈수록 좁아지는 느낌이다.

‘면세점 사업권은 재벌 특혜’라며 한 야당의원이 발의한 면세점 사업법도 문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한국 면세업계의 경쟁력만 떨어뜨리고 있으니 말이다. ‘재벌’, ‘대기업’이란 말만 등장하면 정치권은 어찌 그리도 인색할까. 법 취지를 살리지 못해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이 커도 괜찮을 정도로 대기업은 무조건 배제하고 규제해야 표가 올라가는 걸까.

국민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논리로 생각해도 모순이다. 청년 ‘표심(票心)’을 얻고자 청년 일자리를 외치면서 정작 각론에선 외면하는 모양새니 말이다. 또 정치권이 바라는 청년들의 표를 생각해도 모순이다. 대다수 청년이 바라는 일자리는 대기업의 정규직 일자리다. 대기업이 사업을 잘하고 일자리를 늘려야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소망이 이뤄질 수 있다. 이를 외면하면서 ‘우리 당은 재벌기업의 성장을 견제하고 있다’며 청년들에게 표를 호소하는 건 이상하다. 대기업 또는 재벌기업을 인격화해 논리를 전개하는 오류도 문제다. 이 기업들에 근무하는 수십만명의 근로자, 아니 유권자도 결국 누군가가 억제하려는 대기업의 일원인데 말이다.

역대 가장 성과가 없었다는 19대 국회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결국 재벌 특혜를 막은 게 아니라 국민의 소득과 청년 일자리 증대의 여지만 닫아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우리 국회의 시야가 좀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태신 <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